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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개헌안이 대통령 발의로 제안될 예정이다. 제안된 개헌안은 헌법에 따라 20일 이상 주권자인 국민들에게 그 내용을 주지하기 위해 공고되며, 늦어도 60일 이후인 5월24일까지는 국회가 가결이든 부결이든 의결을 해야 한다. 국회 가결을 거쳐야 국민투표에 부쳐지며,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에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이 있으면 개헌은 확정된다.

필자는 이번 개헌안의 자문안을 만든 국민헌법자문특위에 위원으로 참여했음을 미리 밝혀둔다. 그렇지만 자문특위 위원으로서가 아니라 헌법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객관적으로 이번 개헌과 관련한 몇 가지 생각을 적어보고자 한다.

우선 자문특위의 자문안은 33명 위원들이 개헌과 관련해 가지고 있던 각자의 이상적인 생각들을 모은 것이 아님을 밝힌다. 자문특위 내에 국민참여본부가 있어서 개헌과 관련한 다양한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자 노력했다. 심층면접 여론조사나 온라인상의 다양한 개헌 여론 수렴뿐만 아니라, 일반국민이 개헌에 관해 토론하고 전후에 설문조사를 하는 ‘숙의형 토론회’, 지역시민사회 간담회, 유관단체 간담회도 이러한 노력에 포함되었다.

자문특위 위원들은 이러한 국민 의견에 기반해 자문위안을 만들었으며, 몇몇 개헌의 쟁점들에 있어서는 위원들 간에 합의가 도출되지 않아 제1안, 제2안 하는 식의 복수안이 자문위안에 포함된 것들도 있다. 합의가 된 자문위안은 대통령에 의해 최대한 존중되었으며, 복수안으로 올라간 쟁점들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선택이 있었고 그 결과가 오늘 발의된 대통령 헌법개정안이다.

이번 개헌이 촛불혁명으로 촉발되었다는 데에는 아마 이견이 없을 것이다. 모든 혁명이 개헌으로 완성되듯, 촛불혁명도 이번 개헌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촛불현장에서 많은 국민들은 일관되게 대통령과 국회라는 국민의 대의기관들이 다수 국민의 뜻을 국정 운영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던 ‘대의제의 실패’를 지적했다. 그래서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퇴진이 줄곧 주장되었고 민의를 저버린 선출직 공무원들에 대한 국민소환제 요구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이런 촛불현장의 목소리들도 이번 개헌안에 많이 반영되었다. 그래서 국민이 법률개정안을 제출할 수 있는 국민발안제, 임기가 보장된 선출직 공무원들이라 하더라도 국민들의 뜻을 크게 거스를 경우 임기 만료 전에 파면할 수 있는 국민소환제가 개헌안에 담겼다.

또한 민의에 의한 책임정치의 강화를 위해 대통령 4년 연임제가 채택되었다. 1987년 이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이 대두된 새로운 기본권들인 정보인권, 안전권 등을 신설하고 사회보장수급권이나 주거권, 건강권 등 복지사회의 사회권들이 구체화되고 강화되는 등 국민 기본권 보장도 확대되었다. 국가기관 간의 분권도 중요하지만, 중앙과 지방 간의 분권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기에 지방분권에 대한 여러 헌법조항들이 신설되었다.

대통령제 헌법의 권력 간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더 원활히 작동하게 하기 위해 대통령의 국가원수 지위를 헌법에서 삭제하고 특별사면권, 조약체결권에 제한을 강화했으며 예산법률주의 도입 등을 통해 재정과 관련한 국회의 행정부 견제권을 늘리고 9명의 헌법재판관 전원의 임명에 대해 국회 동의를 얻게 하는 등 국회의 인사권도 일부 강화하였다.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로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국회가 당리당략이 아니라 또 한번 광범위한 국민 여론 수렴을 통해 민의를 확인하고 이를 반영해서 국회의 개헌안에 대한 의결권을 엄중하게 행사해야 할 시점이다.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발의권 행사에 의해 발의된 개헌안에 대해 자세한 내용 검토나 국민 여론 수렴도 없이 ‘관제 개헌’이라고 몰아가서는 곤란하다. 대통령제니, 의원내각제니 하는 정부 형태 조항에만 너무 집착하지 말고 기본권이나 지방분권 등 개헌안의 다른 부분들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발의된 개헌안에 대해 일부 내용을 바꾸어 국회가 국회 심의단계에서 수정의결을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수정의결은 국민들에게 공고되지 않은 새로운 개헌안을 국회가 의결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개헌안이 국회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개헌안이라면 서둘러 여야 합의로 국회 발의 개헌안을 만들어 국민들 앞에 제시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국회 개헌안이 합의된다면 대통령 개헌안은 철회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인 바 있다. 지난 대선에서 지방선거와 개헌투표 동시 실시는 여야 후보의 공통된 공약사항이었음을 국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서둘러야 한다. 6월13일에 개헌 국민투표도 같이하려면 이제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국회는 설마 이번에도 공약(公約)을 공약(空約)으로 만들 생각은 아니지 않은가.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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