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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엊그제 기자들과 만나 “홀로 하려니 금전적인 부분부터 빡빡하다. 현재는 당이 없다보니 다 내 사비로 모아놓은 돈을 쓰고 있다. 종국적으로는 어떤 정당이든 함께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정당과 함께하겠다. 설 연휴 이후 입당의 가닥이 잡힐 것”이라고 했다. 반 전 총장은 지난 12일 입국 때는 “지금 당장은 어떤 정당에 바로 소속한다든지 그런 건 생각 안 하고 있다”고 했다. 불과 1주일도 안돼 정당 입당에 관한 생각이 바뀐 것이다. 조기 대선 국면에서 조직과 자금 지원이 가능하고 검증 등 수많은 난관을 넘기 위해서는 기존 정당에 몸을 담는 게 여러 모로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그래도 정당 선택의 이유가 정치 비전과 정책을 함께 실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금전적으로 빡빡해서’라니 듣고도 믿기지 않는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8일 “활동비가 필요해 입당한다는 말은 정치 지도자에게서 들어보지 못했다. 정당이 현금인출기도 아니고 우리 정치의 수준을 낮추는 상식 이하의 발언”이라고 힐난했다. 너무도 당연한 지적이다. 정당은 돈과 조직을 대는 도구가 아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7년 1월 19일 (출처: 경향신문DB)

반 전 총장은 귀국 직전 미국에선 “정당이 뭐가 중요하냐”고 했다. 이를 놓고서도 대의민주제의 핵심인 정당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정당은 의회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 요소다. 정당 없이 민주주의는 없다. 민주주의는 여러 정당이 유권자의 뜻을 받들어 책임정치를 경쟁하는 제도다. 반 전 총장은 그간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계의 추대론을 즐기다가 탄핵 바람이 불자 이젠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을 놓고 저울질 중이라고 한다. 뚜렷한 정치적 소신과 철학으로 당을 선택하기보다 백화점에서 물건 고르듯 이해득실을 따지는 태도는 도저히 국가 지도자의 처신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렇지 않아도 반 전 총장은 귀국 후 계속되는 보여주기식 행보와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애매모호한 화법으로 정체성이 불분명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가는 데마다 구체적 해법은 없이 유엔 사무총장 출신 이력만을 내세워 과연 그가 준비된 대선주자인지 의문을 낳고 있다. ‘정치 낭인’으로 떠돌던 MB(이명박)계 인사들이 다시 제 세상 만난 양 주변에서 활개를 치는 것도 볼썽사납고, 자신과 동생·조카를 둘러싼 비리 의혹도 아직 완전히 해소됐다고 볼 수 없다. 반 전 총장에 대한 지지도가 컨벤션 효과는커녕 귀국 전(20%·한국갤럽)이나 귀국 후(20%·한국리서치)가 별 변동이 없는 것도 이런 점들이 반영됐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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