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반 칼럼

[여적]이등병

opinionX 2014. 10. 15. 21:00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는 날/ 부모님께 큰절 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 가슴속에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풀 한 포기 친구 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요절한 가수 김광석이 부른 ‘이등병의 편지’다. 군 입대를 앞둔 젊은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왔다. 애잔한 곡조와 정감어린 가사에, 우수에 찬 김광석의 목소리가 호소력을 더한다. 이 노래는 제목과는 달리 이등병의 군생활을 다루지 않는다. 그렇다고는 해도 노래 제목에 이등병을 넣은 것이 인기를 높였을 것이 분명하다. 군대에 다녀온 남자라면 누구나 힘든 이등병 시절을 애틋하게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노래 제목을 ‘병장의 편지’로 달았다면 어땠을까. 선임병사라면 애절한 ‘군대 노래’의 주인공으로 어울리지 않을 터이다.

최근 들어 병영 폭력사건이 빈발하고 있다. 병사들 사이에 ‘참으면 윤 일병, 못 참으면 김 병장’이란 말이 돌 정도이다. 그런데 군내 폭력사건의 양상은 계급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병장은 폭력에 보복하기 위해 총기를 난사하지만 이등병은 폭력에서 벗어나려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계급이 낮을수록 대응이 소극적·간접적이고, 높을수록 적극적·직접적인 셈이다. 물론 어느 경우든 가해자라기보다는 피해자의 모습이다. 병사들을 인격체가 아니라 소모품처럼 취급하고, 폭력을 감싸는 폐쇄적 병영문화가 가해자이다.

헤어지기 아쉬운 병사들의 셀카 (출처 : 경향DB)


육군이 병사 계급 체계를 현행 4단계에서 ‘일병-상병’의 2단계로 줄이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한다. 훈련소에서만 이등병으로 지내고, 부대 배치 때 일병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병장도 일정 기간 복무하면 자동 진급하던 것을 없애고 상병 가운데 우수 인력을 진급시키는 방식이다. 병영 내 부조리와 폭력을 없애기 위한 조치라는데, 이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다. 계급은 선·후임을 구분하는 편의적인 명칭일 뿐, 병사의 권력 크기를 실질적으로 가르는 것은 월 단위의 입대 날짜이다. 왜곡된 서열문화가 바뀌지 않는다면 피해자이자 약자인 ‘이등병’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폭력의 근본 원인을 직시하지 못한 채 군을 거대한 인권침해와 폭력의 장으로 내몬 군당국이 언제 바뀔 것인지 답답하다.


조호연 논설위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