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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우 다음카카오 대표는 그제 기자회견을 자청해 “안이한 인식과 미숙한 대처로 (카톡) 사용자에게 불안과 혼란을 끼쳐 송구하다”고 밝혔다. 그는 “향후 프라이버시를 우선하는 정책을 실시하겠다”면서 “감청 영장 집행에 응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대국민 사과는 당국의 압수수색 영장 집행 과정에 이용자 권익을 팽개친 데 대한 비난 여론을 의식한 것이다.

다음카카오가 ‘감청 불응’을 선언한 것은 국가 공권력 집행에 반기를 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만큼 카카오톡 이용자들의 도·감청 불안감이 크다는 방증이다. 뒤늦게나마 과오를 인정하고 대책을 마련한 것은 평가할 수 있다. 다음카카오는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의 사찰 논란이 불거진 뒤 거짓 해명과 안이한 대응으로 이용자들의 불만을 증폭시켰다. 사후 대책으로 대화 내용을 암호화하고 상대방이 읽은 메시지는 바로 삭제키로 한 것은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진일보한 면이 있다.

하지만 이번 대책이 이용자 불안을 해소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느닷없는 ‘감청 불응’ 방침도 이해할 수 없다. 향후 당국의 감청에 불응하겠다면 지금까지는 응해왔다는 말인가. 회사 측은 “감청장비도 없을뿐더러 기술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고 밝힌 터다. 이런 마당에 느닷없이 공권력에 저항하는 모양새는 뭔가. 이용자를 안심시키겠다는 취지는 모르는 바 아니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다. 그간의 감청 실태를 명확히 공개한 뒤 사후 대책을 내놓는 게 순리 아닌가.

15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 사이버 정치사찰, 국민감시 중단과 재발방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박세증 철도노조 청량리 기관차 승무지부장(좌측에서 세번째)등 이 피해사례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다음카카오 측이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생각이 있다면 해법은 간단하다. 대화 내용을 저장하지 않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 다음카카오는 “이용자들을 위한 서비스 차원”이라고 하지만 군색하기 짝이 없다. 사적인 대화내용을 저장하겠다고 이용자 동의를 받은 적이 있는가. 약관에도 없는 대화내용 저장은 불법이다. 암호화나 저장기간을 줄인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손쉬운 길을 놔둔 채 언제까지 변명으로 일관할 건지 묻고 싶다.

무엇보다 논란이 확산된 것은 사법 당국의 책임이 크다. 수사 편의를 위해 도·감청 영장을 남발한 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전담팀을 꾸려 사이버 공포감을 조성한 게 누구인가. 온라인상 명예훼손 글에 대해 검찰이 삭제권한을 행사하겠다는 발상은 어처구니가 없다. 법원도 무모한 영장 남발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파문이 확산되자 정부는 오늘 유관기관 대책회의를 갖고 대안을 모색한다고 한다. 사이버 검열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당국은 국민 불안을 조성한 데 대해 사과하고 사이버 사찰 계획을 전면 폐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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