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오늘로 한달을 맞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는 한국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온전히 드러냈다. 한국은 지난달 20일 최초 환자 발생 때의 기대와 달리 역병 확산을 막지 못한 채 세계 2위 발생국 오명을 얻었다. 전염병에 취약한 방역 체계와 정부의 무능, 대형병원의 오만으로 인한 메르스 확산도 목격했다. 그러나 이런 한계 못지않게 메르스 사태가 드러낸 본질이 따로 있다. 바로 한국이 얼마나 신뢰가 낮은 사회인가 하는 점이다. 한국사회가 한달간 보여준 것은 정부, 병원, 환자, 보호자 간의 소통 부재와 신뢰 결여였다.

한국이라는 리트머스 시험지에 가장 뚜렷하게 부각된 것은 거짓말이었다. 환자들이 자신이 방문했던 병원 정보를 숨기는 일이 속출했다. 예컨대 76번째 환자는 지난 6일 건국대병원에서 삼성서울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답했다. 삼성서울병원 치료 사실을 숨긴 것이다. 그로 인해 구급차 운전기사, 구급요원 등 4명이 줄줄이 감염됐다.

광고

병원들은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을 동원했다. 삼성서울병원은 ‘슈퍼전파자’인 14번째 환자가 평택성모병원 입원 사실을 숨기는 바람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으나 그가 평택성모병원에서 찍은 컴퓨터단층촬영(CT) 사진을 입원 시 제출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정부도 업적 홍보를 위해 거짓말 대열에 합류했다. 폐렴환자 전수조사를 통해 알려지지 않았던 메르스 환자를 찾아냈다는 발표가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다. 1064개 병원·의료기관에서 조사했지만 3000여곳에서 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정부와 병원과 환자가 서로를 속이는 동안 공포는 확산되고 메르스 사태는 악화됐다. “메르스 사태는 거짓말과의 싸움”이라는 김우주 대한감염학회 이사장의 말에 공감한다.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이 7일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중강당에서 병원의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도중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출처 : 경향DB)


정부와 병원, 환자가 정직하지 않게 된 것은 서로를 믿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을 밝히더라도 아무런 불이익을 당하지 않고, 보호받거나 치료받거나 따라줄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면 상황은 전혀 다르게 돌아갔을 것이다.

특히 메르스 환자와 격리대상자는 전염병의 매개체로서가 아니라 공익을 위해 희생하는 선의의 피해자라는 점을 사회 전체가 인식할 필요가 있다. 사소한 증상도 스스로 알리는 것이 자신과 지역을 보호하고 공동체에 기여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메르스를 잡기 위해서는 방역 강화와 함께 사회적 불신 해소가 중요하다. 서로 신뢰하지 않고, 사회적 연대가 없는 사회는 무시할 만한 역병에도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한국의 메르스 사태가 증명하고 있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