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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이라는 소설가가 한 매체에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이란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신경숙씨의 표절문제를 제기했다. 탐미주의 거장으로 <금각사>의 저자인 미시마 유키오의 문장을 빌려왔다는 것이다.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 중 233페이지(1983년, 주우 출판, 김후란 옮김)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워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코도 잘 응했다. 첫날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중위도 그런 레이코의 변화를 기뻐하였다.’

신경숙의 <전설> 중 240페이지(창작과비평사, 1996년) ‘(전략)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중략)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후략)’

이 정도면 읽는 사람 누구나 비슷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신랄하게 비판했다. “신경숙은 한국문학의 당대사 안에서 처세의 달인인 평론가들로부터 상전처럼 떠받들어지고 있으며 동인문학상의 종신심사위원을 맡는 등 한국문단 최고의 권력이며 신경숙이 저지른 표절이 (중략) 하루하루가 풍전등화인 한국문학의 본령에 입힌 상처는 그 어떤 뼈아픈 후회보다 더 참담하다”고 덧붙였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신경숙씨에 대한 논란은 그동안 줄기차게 이어졌다. 게다가 거대 출판사들은 자신들을 통해 등단한 작가들을 암암리에 밀어주고 때로는 사재기를 해서 베스트셀러 작가를 만들기도 했다. 물론 한국문단의 뛰어난 작가들, 타고난 작가들을 제외하고는 사실 문학상을 받은 작가라고 해도 글을 읽어보면 기대에 못 미치고, 의아해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문학상을 휩쓰는 일부 작가를 보면서, 이쪽도 연예계처럼 스폰이 있어야 되나 하는 의구심이 들고는 했다.

이런 맹점을 이씨가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지만, 타락한 한국문단이 쉽게 자정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이응준씨의 말이 그저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전업작가로서의 삶에서 나오는 베스트셀러 작가에 대한 시샘, 즉 이솝우화에 나오는 따지 못할 포도를 신포도로 규정해 버리는 여우의 비겁한 변명처럼 들리지 않는 것도 출판사들의 상업주의와 패거리주의와 문단의 타락 때문이다.

TV에 얼굴을 자주 비치는 삐쩍마른 한 글쟁이의 되지도 않는 소설을 우리나라 최고의 출판사에서 (이 출판사에서 책을 출판하려면 적어도 3달 이상의 검토가 필요하단다) 급조해서 만들어내는 작금의 현실이 지속된다면 한국문학은 당분간 침체의 구렁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들지도 모른다.

황석영의 <여울물소리>를 사재기했던 출판사의 몰지각한 행위도 사장이 바뀌었다고 끝난 게 아니다. 이 출판사는 다만 재수가 없었을는지 모른다. 그 이전에 적지 않은 출판사에서 사재기를 해서 암암리에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낸 것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다. 그래서 때로는 대형 출판사에서 나온 함량 미달의 베스트셀러를 지켜보면서 창작 의지가 꺾인 수많은 작가들은 어쩌란 말인가. 물론 베스트셀러가 다 그렇다는 게 아니다. 사재기 등으로 기획된 베스트셀러들을 말하는 거다.

이씨의 “신경숙과 같은 극소수의 문인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한국 문인들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버겁고 초라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작가임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려는 까닭은 비록 비루한 현실을 헤맬지라도 우리 문학만큼은 기어코 늠름하고 진실하게 지켜내겠다는 자존심과 신념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라는 절규가 아프게 와 닿는다. 이 시간에도 적지 않은 무명작가들이 궁핍하게 뼈를 깎는 고통으로 창작에 임하면서 한번이라도 무대에 서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이 파문을 낳은 17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한국소설 화제의 책 코너에 신씨의 소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등 3권이 진열돼 있다. (출처 : 경향DB)



최희원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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