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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진퇴 문제로 숙고하는 모양이다. 19대 총선에서 패했다는 결과보다 그 패배에 이르게 된 과정이 더 문제라는 내부의 질타가 쏟아져나오는 상황이다. 그러나 지도부 몇몇이 책임을 진다고 해서 충격의 패배가 쉽게 추슬러질 것 같지 않다. 민주당으로선 곱씹을수록 기가 막히고, 반추할수록 용납할 수 없다는 후회가 밀려오는 탓이다. 자신들의 존재감에 대한 근본적 회의라 할 수 있다. 딱히 여권의 안정적 승리라 할 수는 없지만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승리이고, 민주당의 패배가 분명한 총선 결과가 몰고온 후폭풍이다.
(경향신문DB)
민주당의 패인은 한둘이 아니다. 으뜸이라면 ‘친노 인사’들의 독주, 전횡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참여정부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뒤 ‘폐족’을 자임했다가 2010 지방선거로 회복한 과도한 자신감이 문제다. 그들은 오만과 자만으로 똘똘 뭉쳤고, 그들이 주무르는 공천은 온갖 잡음을 낳았다. 그들의 뇌리 속에 총선 승리는 따놓은 당상이었고, 그들의 눈은 대선을 향했다. 총선을 통해 국민에게 어떤 미래 비전을 제시할 것인지 고민은 보이지 않았다. 한 대표의 리더십 부재도 패인으로 거론되지만 친노들의 과오에 비하면 곁가지에 불과하다. 당의 주주들인 대선 주자들이 옹립한 한 대표의 역할과 능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패거리 문화’가 범람하면 제대로 된 전술·전략이 나올 수 없다. 그들은 늘 이명박 정권 심판론을 입에 올리면서 시선은 박 위원장을 겨눴다. 이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공동책임론을 제기하는 데만 집착했을 뿐 수권정당으로서 신뢰감을 얻으려는 노력은 별로 없었다. 많은 유권자들이 ‘이명박’에서 ‘박근혜’로의 권력교체도 일종의 정권교체로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다는 점을 간과한 탓이다. 이 바람에 이명박 정권의 민간인 사찰에 대한 공세는 효과가 반감됐고, 자성이 전제되지 않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공세도 먹혀들지 않았다.
김용민 민주당 후보의 막말 파문에 대한 대응은 전략·전술 부재와 철학적 빈곤을 드러낸 전형적 사례다. 무엇보다 원칙과 상식이 통하지 않았다. 대신 ‘나꼼수’에 대한 지나친 의존으로 인한 기회주의적 처신과 SNS 과신이 국민적 불신만 불렀다. 김 후보의 여성 비하, 노인 박해, 기독교를 향한 막말은 쓰나미처럼 번져나갔고, 강원과 충청은 물론이고 수도권 접전 지역도 날려버렸다. 단일화 경선 과정에서 하자가 드러난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의 후보 사퇴는 교훈이 되지 못했다.
민주당의 위기는 박 위원장에 대한 오판과 착시에서 비롯된다. 박 위원장의 정치적 실체와 영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이다. 그들 눈에 비친 박 위원장은 여전히 과거세력이고, 50~60대 노인층의 지지를 받아 버티는 영남의 맹주일 뿐이다. 집권세력의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에만 기대온 전략·전술의 한계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민주당이 스스로의 존재이유에 대해 절체절명의 위기감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박 위원장이 왜 많은 유권자들에게 ‘과거와의 단절’에 성공한 여권의 강력한 차기 주자로 비쳐졌는지 있는 그대로의 현실부터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박 위원장과는 차별화되는 자신들의 미래 비전을 설득력있게 제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민주당의 대오각성과 환골탈태가 선행돼야 한다. 민주당이 후진적 정치행태를 청산하지 못하는 한 대선도 미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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