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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이 미결수에서 기결수로 전환된 17일 건강 상태를 이유로 형집행정지를 신청했다.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 중인 박 전 대통령은 이 사건에 따른 구속기간은 종료됐으나 별개의 새누리당 공천개입 혐의로 징역 2년형이 확정돼 기결수 신분이 됐다. 박 전 대통령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는 신청서에서 “경추 및 요추 디스크 증세 등이 호전되지 않았다. 불에 덴 것 같은 통증과 칼로 살을 베는 듯한 통증, 저림 증상으로 정상적 수면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석방을 요구했다. 재판을 거부하며 국가 형사사법을 모욕해온 장본인이 이제 와서 형사사법 절차에 따른 은전을 구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형사소송법은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람이 형 집행으로 ‘현저히 건강을 해하거나 생명을 보전할 수 없을 염려가 있을 때’ 석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2013년 ‘여대생 청부살인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영남제분 회장 부인 윤모씨가 허위진단서로 풀려난 사실이 드러난 이후 검찰청 심의위원회 심사를 거치도록 절차가 엄격해졌다. 법무부는 지난해 말 박 전 대통령의 수형생활과 관련해 자료를 낸 바 있다. 식사를 거르지 않고, 매일 적정 시간 취침하고,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1시간 이내로 실외운동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암이나 이식수술 후 거부반응 같은 중한 질환 외에 디스크 같은 질환으로 형집행정지가 이뤄진 사례는 극히 드물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4월18일 (출처:경향신문DB)

유 변호사의 신청서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인권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고 집권한 현 정부가 고령의 전직 여성 대통령에게 병증으로 인한 고통까지 계속 감수하라는 것은 비인도적 처사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몸도 아프고 여성의 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한 발언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지금 이들은 박 전 대통령의 건강을 염려해 석방론을 제기하는 건가, 아니면 문재인 정권을 향해 정치투쟁을 벌이는 건가.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10월부터 법정 출석을 거부하며 건강 문제를 이유로 들었다. 이번에는 건강을 이유로 풀어달라고 한다. 대통령 재임 중 그토록 법치를 강조하더니, 자신이 사법 심판의 대상이 되자 법치를 제 마음대로 유린하려는 형국이다. 실정법적으로나 정치윤리적으로나, 그의 형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한국당도 이른바 ‘태극기부대’를 의식한 석방론을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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