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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묘한 페인트 모션이다. 지난 28일 문화부가 발표한 ‘스포츠 4대악 중간조사 결과 발표’는 이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한꺼번에 제치는 과감한 드리블이었다.

문화부가 10개월 가까이 ‘비리 근절’이라는 무서운 단어를 앞세워 전진 압박을 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은 이 정부가 천명한 대로 뿌리의 뿌리까지 캐내는 ‘발본색원’이 될 것인지, 아니면 태산명동에 서일필로 그칠 것인지 주목해 왔다. 일단 총론에서 쥐 한 마리로 그치지는 않았으나 그저 태산의 울음 때문에 혼비백산한 서너 마리가 뛰쳐나온 격에 머물렀다. ‘스포츠 4대악 신고센터’를 통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69건의 비리 제보가 접수돼 118건이 종결되고 2건이 합동수사반 수사 후 검찰에 송치되었다. 이 제보들 중 89건은 사실상 ‘혐의 없음’으로 종결되었고 현재 151건에 대한 조사 및 감사가 진행 중이다.

소치 동계올림픽 때 불거진 ‘안현수 파문’을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이 ‘비리 근절’을 천명하여 신고센터를 중심으로 활동을 개시한 지 10개월이 넘었으며 문화부가 경찰과 함께 ‘합동수사반’을 꾸려 조사가 아닌 수사의 입장에서 접근한 지 7개월이 소요된 활동 결과치고는 그릇이 좀 비었다. 게다가 이른바 ‘정윤회 십상시 파동’ 와중에 이 나라 최고 수준의 파워 게임과 ‘무관함’을 매우 공격적으로 밝힘으로써 오히려 ‘어떤 관련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역설의 수사학을 보여준 김종 차관이 진두지휘한 사안임을 감안하면 조금 싱겁다. 각종 지원금을 포함한 공금 13억3000만원을 자기 돈처럼 쓴 택견연맹 이사장이 구속되었고 아들을 대학에 보내려 승부조작을 지시한 동아대 유도부 감독이 확인된 정도. 물론 중간 발표이고 앞으로 151건이나 더 조사를 한다고 하니, 사법 처리까지 이어지는 결과는 좀 더 늘어나겠지만 한 해 동안 스포츠계를 뒤흔든 것에 비하면 아무래도 초라한 결과다.

문화부는 이를 연말의 일요일에 기습 발표함으로써 해를 넘기지 않고 어떤 결실을 거둔 것처럼 하였다. 짐작하건대 이는 신년 초로 예고되는 개각 및 정부 분위기 일신과 무관치 않은 드리블이다. 앞서 언급한 ‘파워 게임’에 의해 본인의 ‘뜻’과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막강한 힘을 가진 것처럼 보였으나 정책과 실적 면에서 뚜렷한 결과를 내놓지 못한 김종 차관으로서는 해를 넘기기 전에 대통령의 관심사항인 ‘비리 근절’에 관해 일정한 성과를 발표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울러 전임 유진룡 장관과 청와대 사이에 불거진 험악한 상황, 즉 정윤회씨와 관련된 추문이 아니라 스포츠계 비리 근절과 관련한 미미한 성과에 대한 책임을 물어 유 장관을 경질했다는 청와대의 공식 견해를 이번 조사 발표가 방점을 찍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아무튼 그런 양상을 두루 검토하여 나는 절묘한 페인트 모션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 “스포츠 4대악 중간조사 발표
개인 비리로 축소 본질 덮어
큰소리에 비해 초라한 결과”


그러나 솔직히 표현한다면 이번 발표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하는 절묘한 페인트 모션이 아니라 야유를 부르는 질 낮은 할리우드 액션에 가깝다.

우선 이 나라의 스포츠 정책에 있어 가장 높은 자리, 제일 강력한 갑의 위치에 있는 문화부가 수십 년 동안 자신들이 통제하고 관리해온 분야, 즉 이 나라의 스포츠 전체를 일단 악의 축으로 상정한 후 ‘발본색원’과 ‘비리 근절’을 앞세웠다는 점부터 지나치게 공세적이었다. 체육계의 역사와 현황을 잘 알고 있을 문화부라면 현재의 행정력으로도 충분히 조사와 계도와 개혁이 가능할 터인데 경찰과 함께 ‘합동수사반’을 편성함으로써 범죄 사건에 임하는 태도를 취했다. 스포츠 선수와 감독은 권력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대한건아’에서 ‘범죄의 온상’을 오락가락한다.

이렇게 입장을 취하고 수사팀까지 갖췄다면, 이 정부가 좋아하는 표현대로 그야말로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일망타진’ 하는 자세를 보였어야 한다. 그랬다면 스카우트 비리와 금품 수수, 뇌물과 독직, 승부 조작, 군사적인 훈련 문화와 폭력, 고질적인 서열 문화와 폭행, 횡령과 배임 등으로 체육계 전체가 뒤숭숭해졌을 터인데 중간 조사 발표만 보면 기어를 중립에 놓고 액셀러레이터만 거칠게 밟은 격에 그쳤다. 이런 사안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이 문제들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받는 피해자가 반드시 전제되는 사건이므로 말 그대로 엄단하고 근절해야 한다.

이번 발표의 치명적인 문제는 스포츠의 적폐를 승부 조작, 금품 수수 같은 개인 비리로 축소했다는 점이다. 숱하게 나열된 개인 비리는 오래된 구조적 적폐를 덮어버리는 착시 효과를 낳는다. 가령 당사자들의 강력한 해명이 있기는 했지만 정윤회씨 딸과 연관된 ‘심판 압력 및 승부 조작 의혹’이나 현 정부 들어선 이후, 구체적으로는 김종 차관 선임 이후 벌어진 스포츠계 상층부의 파워게임에 대한 의혹들이 내 생각에는 보다 시급하고 본질적인 현안이다.

이는 지금 이 정권의 몇몇 당사자들에게 연관된 국지적 사안이 아니라 스포츠를 권력의 전리품이자 병풍으로 여겨온 수십 년 관행과 연관된 오래된 쐐기이다. 이 쐐기를 뽑아서 낡은 복마전의 구조를 한번은 흔들어야 하는데, 모두가 당사자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말단 행정 직원이나 지도자 몇몇만 희생자로 앞세워 버리는 쪽을 택한다.

문화부와 대한체육회 등이 두루 망라된 강력한 구조 개혁을 기대했던 입장에서 보면 이번 조사를 ‘역대 정부에서 시도한 일이 없’던 것이라고 강조하고 ‘더 이상의 관용은 없다’고까지 한 문화부의 선언이야말로 숱한 개인 비리를 나열하여 문제의 본질을 덮어버리는 아주 고약한 할리우드 액션 반칙이다.


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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