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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엊그제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만나 기존 순환출자의 의결권을 제한토록 하는 경제민주화 공약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행추위가 마련한 대기업집단법 제정과 경제범죄 기업인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제, 재벌 총수·임원 급여 공개 등 핵심 공약도 거부했다고 한다. 이어 열린 선거대책위 회의에서 박 후보는 “기존 순환출자 고리를 끊으려면 몇 조원씩 들어가는데 경제위기 시대에 이를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쓰는 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조만간 (경제민주화 공약을) 정리해서 발표하겠다”고 밝혔으나 ‘김종인 표’ 공약은 이미 형해화하고 있다. 오랫동안 박 후보의 경제정책을 보좌해온 김광두 힘찬경제추진단장의 시기조절론은 그 증좌 중 하나다. 김 단장은 박 후보를 옹호한 뒤 “국내외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땔감(성장)을 마련하면서 구들장(경제민주화)도 고치자”고 주장했다. 대선 후보들의 경제민주화론에 맞서 경제사막화론을 제기하며 강력히 저항하는 재계의 논리와 별반 차이가 없다. 박 후보의 김종인표 공약 거부가 사실상 경제민주화의 폐기로 비쳐지는 까닭이다.


손인사 하는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 (경향신문DB)


시기조절론은 허망하다. 5년 단임의 우리 대통령제 아래서 지지율이 가장 높은 취임 6개월 동안 역점사업을 수행하지 못하면 어렵다는 사실은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다. 시기조절론이란 표가 된다면 내걸긴 하겠으나 꼭 실행할 의사는 없다는 자인과 같다. 경제위기론도 덧없기는 마찬가지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주장해온 대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된 1980년대 말 이후 재계 입장에선 경제위기가 아닌 적이 없다. ‘총체적 난국론’을 시작으로 ‘산업공동화론’ ‘샌드위치론’ ‘촛불경제위기론’을 거쳐 ‘경제사막화론’에 이르렀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경제위기를 내세워 개혁을 회피해온 재계의 프레임은 견고했다. 그 적폐가 ‘1% 대 99%의 세상’ 즉, 극심한 양극화이다.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이 제기된 배경이기도 하다.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론이 눈길을 끈 것은 듣기 힘든 보수진영의 목소리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지난 4·11 총선 때 경제민주화를 핵심공약으로 내세워 제1당을 차지했고,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도 국민 행복을 위한 3개 핵심 과제 중 으뜸으로 꼽았다. 그런 박 후보가 경제위기론을 들어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 어떤 정치적 분석을 떠나 친재벌적인 DNA는 숨길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쯤이면 차라리 경제민주화라는 구호를 접는 게 옳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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