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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대구에서 지적장애를 가진 언니와 함께 살던 20대 여성이 “할 만큼 했는데 지쳤다”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숨진 류모씨는 마트에서 아르바이트하며 혼자서 힘들게 지적장애 1급인 언니를 돌봐왔다. 그동안 힘들어도 꿋꿋이 버텨오던 류씨는 최근 월세와 카드 대금 등이 밀리면서 벼랑 끝에 내몰리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류씨는 “내가 죽더라도 언니는 좋은 시설보호소에 보내달라”며 “장기는 다 기증하고 빌라 보증금(500만원)도 사회에 환원하길 바란다”는 뜻을 유서에 남겼다고 한다.

지적장애나 자폐성 장애 등을 가진 발달장애인은 장애인 가운데서도 특별한 보호를 필요로 한다. 인지력, 표현력, 자기결정력 등이 부족해 성인이 돼도 자립이 어려운 데다 일반 복지시설에서조차 감당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발달장애인의 특성에 맞는 교육과 복지가 턱없이 미비한 환경에서 결국 모든 책임은 가족이 질 수밖에 없었던 게 그간의 현실이었다. 최근 광주시가 발달장애인 가족을 심층면접 방법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장애인 10명 중 9명이 부모(79.4%)나 형제(5.3%) 등 가족의 도움으로 일상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장애인들이 서울 서초구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승차표를 제시하며 버스 승차를 시도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할 만큼 했는데 지쳤다”는 류씨의 유언은 ‘장애인 중에서도 장애인’이라 불리는 20만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처지를 절절히 대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땅에서 발달장애인을 둔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며 이민을 떠나거나 심지어 자녀와 동반자살의 길을 택했던 사례들이 그동안 발달장애인 복지의 현주소를 잘 말해준다. 뒤늦게나마 발달장애인의 특성 및 욕구를 반영해 그들의 삶을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한 ‘발달장애인 권리 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지난해 4월 제정돼 오는 11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것은 그나마 긍정적이다. 현재 시행령 등 하위 법령을 만드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어 주목된다.

대구 두 자매의 비극은 장애인 복지의 사각지대를 보여준 점에서 송파 세 모녀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류씨는 숨지기 전에도 언니와 함께 수차례 자살을 시도했지만 주위로부터 아무런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도 국가와 사회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것은 비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제2, 제3의 류씨와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발달장애인법 하위 법령 마련 등의 과정에서 세심하고도 치밀한 논의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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