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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주 돌연 사의를 표명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의 최측근인 임 차장은 대법원이 일선 법관들의 사법개혁 움직임을 저지하기 위해 법원행정처 소속 판사를 압박한 의혹의 장본인으로 지목돼 왔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사법부 수뇌부가 법관의 인권과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사법개혁을 방해한 것이다. 양승태 사법부의 비민주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법농단’이다. 임 차장 사퇴로 사태가 수습될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사법개혁 설문을 진행한 국제인권법연구회는 판사들의 자율적인 학술모임이다. 보수 성향의 판사나 법원행정처 출신 판사들도 다수 가입해 있다는 것을 대법원도 안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이번 사태가 사법부 내 보혁갈등인 것처럼 물타기를 시도하고, 진보 성향의 판사들이 보수 성향의 양 대법원장을 흔들기 위한 것이라는 식으로 여론전을 폈다. 전국 법원에서 판사회의가 잇따라 열리는 등 사법파동으로 번졌지만 지금껏 사과나 반성도 없다. 문제가 불거지자 대법원은 “해당 판사에게 학회 행사 축소 관련 지시를 한 사실이 없으며, 판사가 법원행정처에 부임한 바 없다”고 거짓 해명까지 했다. 이 같은 대법원 태도로 볼 때 임 차장의 사의 표명은 양 대법원장을 보호하기 위한 ‘꼬리 자르기’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임 차장은 대한민국 사법 행정을 담당하고 있는 법원행정처의 2인자다. 이번 사태를 임 차장 개인의 일탈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대법원 재판연구관들이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에게 압력을 가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판사들 입막음을 위해 대법원과 법원행정처가 조직적으로 움직였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심지어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의 판결 성향과 법원 내부게시판(코트넷) 활동을 파악해 인사와 해외 연수 등에서 불이익을 줬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사실이라면 사법부가 ‘판사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운용했다는 얘기가 된다.

대법원은 이인복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진상조사위원회가 양 대법원장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법관 인사는 대법원장 전권이고, 법원행정처로 발령난 판사를 되돌리는 인사를 양 대법원장이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법원행정처를 동원해 벌여온 판사 통제 작업도 이번 기회에 실체가 규명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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