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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 의해 ‘대통령 박근혜’에서 ‘민간인 박근혜’가 된 2017년 3월10일 오전 11시21분, 대선은 시작됐다. 50일 뒤에 19번째 대통령을 만난다.

이젠 여당이 없어 여야 구분도 없지만 ‘열흘 전 여당’의 후보가 승리할 가능성은 없다. 대선 내내 박근혜 수사,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성주 배치, 북한발 안보 변수 등으로 판이 영향을 받겠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탄핵 심판에 승복하지 않고, 친박들은 ‘삼성동팀’을 꾸려 호위무사를 자처하고, 틈만 나며 태극기를 휘날리는 이도 있다. 계속 망가지고 있다. ‘두 달 전 여당’의 일원이었던 바른정당의 후보들도 그 자체로는 힘이 달려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이 가장 앞서 있다. 당 지지율 46%(한국갤럽 3월 3주차 조사 결과). 절반가량이 민주당을 지지한다니, 60년 야당사에서 없던 일이다. 문재인·안희정·이재명 대선 경선후보 3명 지지율 합계는 59%다. 세 명 중 누가 본선에 진출해도 여유 있게 이긴다는 조사도 이어진다. 이쯤 되면 ‘대박’ ‘헐’이고, 대선 결과는 ‘안 봐도 비디오’ 수준이 된다. 그런데 민주당과 소속 주자들을 이런 지위로 밀어올린 것은 당이나 주자들의 온전한 실력이 아니라는 것도 자명하다. 탄핵 국면이 없었어도 이렇게 됐을까. 야당의 우왕좌왕으로, 청와대와 친박의 역습으로 덜컹거리는 탄핵열차를 궤도 위에서 달릴 수 있도록 한 것은 광장의 촛불이었다.

제19대 대통령선거를 51일 앞둔 19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에서 선관위 직원들이 실제 개표소와 동일하게 설치된 개표소에서 모의 개표 시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수정권에서 야당이 제 능력으로 국민의 마음을 얻어 승리했다고 평가될 선거가 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변화무쌍한 상대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진 것이 부지기수였다. 승리의 기억도, 야당 구실을 잘해서가 아니라 정부·여당의 실정과 헛발질에 따른 반사이익이었다. 이를 테면 2014년 6월 지방선거는 세월호 덕분에 패배를 면했다. 한 달여 뒤인 7·30 재·보선에선 ‘폭망’했다. 멋대로 공천한 결과다. 새누리당을 과반 여당으로 만들어주고, 박근혜 폭주를 추인해준 꼴이 됐다. 박 전 대통령이 권력을 떡 주무르듯 한 것은 공사(公私)에 대한 무개념, 1970년대에 머문 인식, 최소한의 도덕적 의식 상실 등이 작용했다. 야당은 무섭지도 않았을 것이다.

국정농단의 결과는 헌법에 의한 단죄였다. 민심은 농단 세력인 보수정당엔 책임을 묻고, 야당엔 수습할 역할을 주려고 한다. 대통령 후보의 자질이 뛰어나도 환경과 구도가 맞지 않으면 국가를 이끌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상황론의 관점에서 보면, 나폴레옹은 프랑스 혁명으로, 에이브러햄 링컨은 남북전쟁으로, 마오쩌둥(毛澤東)은 국공내전으로 역사 속 지도자로 각인됐다. 국가리더십이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야권엔 기회가 왔다.

한편으론 상황은 가변적이다. 예측하는 시나리오대로만 대선판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거가 두 달이 채 남지 않았지만, 그동안 몇 번의 변수가 있을 것이다. 후발 후보들이 손놓고 있을 리 없다. 민주당 대선후보 확정 이후에도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경선후보가 계속 뒤처질 것이라고 예단할 수도 없다. 2002년 대선의 이회창·노무현 대결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그런데 민주당의 대선 승리는 기정사실인 것처럼, 정권교체는 떼놓은 당상인 것처럼 군다는 말이 계속 나온다. 다섯번 진행된 후보 합동토론회를 포함한 경선 과정에서도 그런 모습이 보인다. 키워드는 두 개로 모아진다. 문재인 후보를 향한 ‘대세론’, 안희정 후보를 겨냥한 ‘대연정’이다. 문 후보는 1000명 넘게 캠프에 몸을 실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돕는 것이고, 차기 정부에서의 인선은 별개 문제라고 주장한다. 그렇게 될까. 가장 먼저 띄웠던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의 수백명 전문가들이 긴장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내가 갈 자리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대연정도 차기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에 대한 논쟁이지만, 반복되다 보니 정권교체는 이미 된 것이란 이미지를 주고 있다. 야권의 연대·연합 문제는 뒷전으로 밀렸다. 자유한국당에 대해선 “개혁과제에 동의한다면”이란 전제가 달렸지만, 안 후보는 가치와 비전 이외에 한국당을 견인할 방법은 제시하지 않았다. 한국당은 대연정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도 않는다. 집권세력을 잘 도와줘서 정권교체를 이룬 정당은 없다. 한국당이 국민통합이란 당위를 위해 ‘민주정부 3기’에 선선히 협조할 것이라고 낙관하긴 어렵다.

헌법 1조를 다시 읽어본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민은 정당, 정치 지도자가 하는 일을 다 보고 있다. 오만·자만은 대선 이후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안홍욱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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