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13년 박근혜 취임 후 중앙대 고부응 교수는 카를 마르크스의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을 소개하는 글에서, 부녀의 집권이 19세기 프랑스의 역사반복을 상기시킨다고 말한 바 있다. 1848년 루이 보나파르트는 삼촌 나폴레옹의 신화 덕분에 대통령에 당선됐고, 1851년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공화정을 뒤엎고 황제로 등극한 삼촌의 역사를 조카가 반복했다. 이에,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헤겔의 말을 인용하면서 “한번은 비극, 반복될 때는 소극(笑劇)으로” 끝난다고 마르크스가 덧붙인 사실은 유명하다. 마르크스는 “나폴레옹의 가면을 쓴 자신을 진정한 나폴레옹이라고 상상하는” 루이 보나파르트를 “자신의 희극을 세계사로 파악”한 “어릿광대”라고 했다. 측근에게 암살당한 박정희의 독재가 비극이었다면, 아버지의 후광 덕에 집권한 딸의 정권이 어떻게 끝날지 2013년엔 알 수 없었다.

박근혜 정권이 탄핵으로 끝난 지 일주일이다. 소극으로 끝난 것일까. 국정농단 사태는 대한민국 정치를 우스꽝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박정희의 가면을 쓴 자신을 박정희라고 상상하는’ 박근혜가 자신만을 위해 연출한 “국민행복시대”의 정치는 누구도 웃을 수 없게 만들었다. 비극인지 소극인지를 정하는 게 중요하진 않다. 누구에겐 비극이면서 누구에겐 소극이기도 한 역사의 반복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살피는 것이 문제다.

대통령 파면 사태에 대한 책임은 박근혜 자신에게 있다. 하지만 그의 무능과 위헌을 방조했던 정치권, 특히 전 새누리당 정치인들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 1998년 정치입문 후 박근혜가 ‘선거의 여왕’으로 군림하며 집권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그의 오랜 문제들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를 보수의 얼굴로 내세워 전제군주 옹립하듯 청와대에 앉혔고 적절히 조언하거나 견제하지 않았다. 그를 ‘주군’으로 불렀다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비롯한 그들은 각자의 이권을 위해 봉건적 퇴행을 연출했고 그의 비민주적 행태를 조장했다. 적시에 문제를 파악하거나 강하게 제재하지 못했던 야권 역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단임으로 물러날 생각이 없던 루이 보나파르트는 개헌으로 대통령직을 중임제로 만들었다. 대통령에 재임된 그가 쿠데타로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건 의회를 이용해서 시민 참정권을 박탈하고 종국에는 의회를 무력화하여 해산시켰기 때문이다. 터무니없는 월급을 요구하는 보나파르트가 보통선거를 폐지한 의회의 범죄행위를 공표하겠다고 협박하며 언론을 동원하자 의회는 쩔쩔맸다. 명분보다 이득을 위해 사분오열하며 비헌법적으로 작동하던 의회는 그의 반의회적 권력행사를 제어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는 프랑스의 의회가 스스로를 파괴하는 “치매성 의회병”을 앓고 있었다고 진단했다. 독재자 보나파르트의 소극에는 이처럼 지리멸렬한 의회가 큰 역할을 했다. 권력에 비판적인 모든 것을 ‘사회주의’로 치부하는 이념공방, 금융자본과의 기회주의적 결탁, 노동계급 탄압도 한몫을 했다.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조직적으로 대변하지 못했던 소농민들은 보나파르트를 지지했지만 그의 소극은 그들을 위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비민주적 역사의 반복에는 비슷한 조역들이 등장한다. 2015년 신년기자회견에서 대면보고 등 소통의 창구를 확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박근혜는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했다. 각료들과 참모진은 일제히 어색하게 웃었다. 그것은 혼군(昏君)의 비위를 맞춰가며 사욕과 보신을 위해 사력을 다하는 무리의 민낯을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박근혜를 지지했던 장노년층 다수 서민들은 그와 측근이 사유화한 권력의 잔치에서 얻은 것이 없다. 하지만 여전히 무고함을 주장하는 그와 친박세력에게 극우 지지층은 그들이 연출하는 탈사실적 소극에 꼭 필요한 들러리이자 관객이다.

탄핵은 정치권의 성취가 아니다. 비극적으로 역행한 민주주의의 시계를 제자리로 돌리려는 민의의 성과다. 촛불에 지탱해서 간신히 탄핵정국을 넘기면서도 미리부터 대선 김칫국을 마시던 정치권은 진보든 보수든 국민이 그들을 신뢰한다고 착각하지 않기 바란다. 국회와 정부, 사법부가 반민주주의의 조연 노릇을 그만두기 위해선, 박근혜를 정치적 이유로 폐위된 비극적 여왕으로 대우해서는 안 된다. 그런 대우야말로 박근혜만을 위한 희극을 완성시켜주는 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후 정치는 계속되고 은폐와 엄호의 조짐이 보인다. 연루된 이들이 많다는 증거다. 위헌적 범죄로 공직에서 파면당한 박근혜와 그 공모자, 조력자들에 대한 엄정한 수사와 처벌을 주저한다면 유신시대부터 누적된 적폐를 청산할 길이 없으며, 비민주적 역사의 반복을 막기 위한 시민적 저항 자체를 희망 없는 소극으로 끝나지 않게 할 도리가 없다.

윤조원 고려대 교수·영문학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