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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선거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다양한 견해를 제시하며 토론하는 마당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대통령 선거 과정은 그렇게 되지 못할 것 같다. 표현의 자유를 옥죄는 심각한 독소 조항이 있는 선거법을 방치한 결과다. 앞으로 촛불집회나 친박단체의 집회에서 대통령 탄핵에 대한 찬반입장을 밝히는 등 정치 현안에 대한 통상적인 발언은 괜찮지만 입후보 예정자를 지지·반대하는 발언은 할 수 없다. 예를 들면 ‘탄핵 환영(규탄)’이나 ‘사드 배치 반대(찬성)’라는 구호는 허용되는데, ‘정권을 교체하자’거나 ‘사드 배치 반대하는 ○○당을 선거에서 심판하자’를 외치면 불법이다. 지금까지 광장에서 맘껏 의사 표현을 하던 것은 이제 범죄행위가 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런 제한이 비현실적인 것은 알지만 그동안 이 조항으로 처벌받은 판례들이 있기 때문에 법 규정대로 적용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악명 높은 선거법 90조(시설물 등의 금지)와 93조(인쇄물 등의 금지)도 그대로 있다. 무심코 차량에 붙이고 다니던 ‘정권교체’나 ‘○○당 아웃’ 등의 스티커도 불법 부착물이 된다. 후보자 초청 대담 내용을 게재한 인쇄물을 배부하는 것도 법 위반이다. 모든 시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모는 선거법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모순을 그대로 두고 선거를 치르는 것은 온당치 않다. 돈은 막고 입은 풀라는 선거법 제정의 취지와 어긋난다. 유권자의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일이 시급하다. 이미 선관위도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선관위는 지난해 이런 맹점을 시정하기 위해 법 90조와 93조를 폐지하자는 개정을 정치권에 요구한 바 있다. 말과 전화를 통한 선거운동을 선거운동기간(대선의 경우 22일)에만 가능하도록 한 제한도 없애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여야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시민들로부터 시시비비를 듣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시민들의 관심과 평가가 불편하다는 의사 표현이기도 하다. 선거 과열 방지를 통제의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시민들의 견해를 제한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비민주적이다.

선거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시민들의 자유로운 의견 표출이다. 선거는 시민의 의사를 결집하는 과정이고 선거 결과 역시 다양한 견해가 모여 형성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막고 선거를 치르겠다면 선거의 정당성도 그만큼 훼손된다는 사실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절실히 필요로 할 때 오히려 억제하는 선거법은 당장 뜯어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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