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쌍용자동차의 2009년 대규모 정리해고는 적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는 어제 쌍용차 해고노동자 153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 확인 소송에서 이 같은 취지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2심 법원과 달리, 정리해고가 불가피했다는 회사 측 주장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였다. 무분별한 정리해고 관행에 제동을 걸기는커녕, 사실상 기업 판단만으로 정리해고를 할 수 있도록 용인한 것이다.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다.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정리해고를 할 만한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이 있었는지, 예상매출수량을 실제보다 낮춰 잡는 등 위기를 부풀렸는지, 사측이 해고 회피 노력을 다했는지 등이다. 대법원은 이 모든 쟁점에서 2심 재판부의 판단을 뒤집었다. 필요인력이나 잉여인력 규모는 ‘경영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하며, 예상매출수량을 ‘다소 보수적’으로 잡았다 해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2심에선 무급휴직을 우선 시행하지 않은 점을 들어 해고 회피 노력이 불충분했다고 봤지만, 대법원은 부분휴업·임금동결 등을 한 만큼 노력을 다했다고 평가했다. 철저히 회사 측 논리에 기울어진 판단으로,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정리해고란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살인’이나 마찬가지인데, 그 결정을 온전히 사측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건가.

13일 대법원이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에 대한 무효확인소송에 대해 '해고는 유효하다'는 취지로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판결 후 대법원 청사를 나서고 있다. (출처 : 경향DB)


대법원은 사회적 파장이 크거나 주목도가 높은 사건의 경우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5년여에 걸쳐 큰 파장을 낳은 이번 사건은 전원합의체에 부치는 대신 소부(小部)에 맡겼다. 또한 파기환송 시 그 사유를 법정에서 설명하는 것이 관례임에도 어제 재판부는 “원심 판결을 파기한다”는 주문(主文)만 읽고 추가설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러모로 이례적이고 납득하기 어렵다. 이번 판결이 오로지 사실과 증거에 의한 판단인지 의구심이 드는 까닭이다.

1970년 11월13일,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의 재단사 전태일은 22세의 나이로 분신자살했다. 2014년 11월13일,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사실상의 ‘2차 해고’를 당했다. 약자와 소수자의 기본권을 옹호해야 할 대법원은 본연의 사명을 외면하고 기득권의 편에 섰다. 44년 사이 한국의 노동현실은 본질적으로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사법부만 탓할 일도 아니다. 해고노동자와 가족 등 25명이 목숨을 잃는 동안 정치권은 도대체 무엇을 했나. 국회는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하는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 정부와 쌍용차도 대법원 판결과 별개로 해고자들의 복직과 생계 문제에 적극 나서야 한다. 더 이상의 희생이 있어선 안된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