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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2월 임기가 끝나는 신영철 대법관의 후임 인선 작업이 시작됐다. 서울변협은 후보로 이석연·장경찬 변호사를 추천했다. 둘 다 법관 경력이 없는 순수 변호사라는 점이 눈에 띈다. 때마침 국회에서는 대법관의 절반을 비(非)법관 출신으로 임명토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판사 출신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지금의 대법관 구성을 바꿔 교수·검사와 재야 출신 변호사에게 문호를 개방하자는 취지다.

대법관 자격은 45세 이상 및 법조 경력 20년 이상으로 돼 있을 뿐 구체적인 제한은 없다. 대법원장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여야 145명 의원이 서명한 법 개정안은 판사 출신이 대법관을 독차지하는 지금의 관행을 강제적으로라도 바꿔보자는 얘기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새누리당 장윤석 의원은 검사 출신이다. 검찰 몫의 대법관 자리를 확보하려는 꼼수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점은 분명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대법관의 인적 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취지 자체는 백번 공감한다.

지금의 대법원은 가히 기형적인 구조다. 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롯한 13명(법원행정처장 제외)의 대법관이 모두 정통 엘리트 법관 출신이다. 이 중 11명은 50대 나이의 서울대 법대 출신이다. 안대희·양창수 대법관이 물러난 뒤 검찰·재야 몫도 모두 법원 출신으로 채워졌다. 1980년대 이후 임명된 84명의 대법관 중 판사 출신이 81%를 차지할 정도니 싹쓸이라는 말이 과장된 표현은 아니다.

오영중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오른쪽)과 김종우 변호사가 17일 서울 서초지법 기자실에서 최근 대법원이 내린 쌍용차 해고자 판결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쏠림 현상은 부작용을 낳게 마련이다. 양 대법원장 취임 이후 법원의 보수·획일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법부의 마지막 보루라는 대법원 위상을 감안하면 전문성 못지않게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균형·다양성도 중요한 덕목이다. 같은 대학에 다니다 사시에 합격한 뒤 평생 한솥밥을 먹은 비슷한 연배의 판사 출신 대법관들이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얼마만큼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제 쌍용차 판결에서는 항소심의 전향적 판결을 뒤집고 대법관 4명이 한목소리로 사용자 편을 들었다.

대법원 판례는 법률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단순한 법 해석을 넘어 시대 변화에 걸맞은 다양한 가치를 반영하는 것은 시대적 요구다. 외국 최고법원을 보더라도 비법률 전문가들이 재판관을 맡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연구관 제도를 두고 있으면서 대법관을 법률 전문가로 제한해야 하는지는 재론의 여지가 있다. 법으로 대법관 구성을 강제할지는 차치하고라도 대법관 추천위원회 구성부터 바꿔야 한다. 대법관·법무장관·변협 회장에게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대법관을 추천하라고 하는 것은 허망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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