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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3일 수능의 강추위가 몰아친 초겨울에 대법원에서는 또 다른 매서운 칼바람이 있었다.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에 대해 2심 판결을 뒤집고 ‘문제가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기나긴 세월을 인내하며 복직을 희망하던 노동자들은 눈물이 터졌고 재계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과연 문제가 없는 것일까? 기업인은 웃고 노동자는 울어도 되는 세상을 정당화하는 가치는 현 정권의 ‘창조경제’론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우리 사회가 참으로 건강하고 좋은 사회가 되기 위해서, 창조경제가 결코 창조하지 못하는 것들이 무엇인가를 우리는 성찰해 보고 행동해야 할 때이다.

창조경제는 외형상 세계 자유시장에서 경쟁력을 근거로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하고자 하지만, 신자유주의 세계 체제에서 비교 우위를 선점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경쟁력이 있어 ‘보이는’ 대기업과 재계 총수들의 특권을 전제로 국내 산업을 육성하려 하기에 우리의 일상과 생활세계마저 대기업 중심으로 예속되어 가고 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하청업체로 종속되고 노동자는 시장의 유연화의 원칙 아래 ‘소모품처럼 사용하다 버려져도 문제없다’고 정당화하는 위험천만한 상황에 이르렀다. 요컨대,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선택한 창조경제론은 우리 사회를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원칙으로 재구조화해 끊임없는 ‘양극화’의 문제를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창조경제의 이념이 농축되어 있는 ‘기업이 살아야 국민이 산다’는 슬로건은 국가 정체성을 표현한 헌법에 위배되는 정신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제1조에서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에 앞서 기업을 우선할 수 있는가? 우선 국민이 살도록 하는 기업을 육성해야지, 국민이 고통스러워하고 신음하고 죽도록 방치하며 기업을 키우는 것은 명백히 대한민국의 헌법에 위배되는 정신이다. 이는 국민의 주권을 현실적으로 무시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소위 ‘잘나가는 기업인’만이 국민의 대표로 인식되고 절대다수의 노동자들은 소모품으로 전락되는 국가사회에서는 미래가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

창조경제는 이처럼 사람과 공동체의 가치를 파괴할 수 있다. 나는 우리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가톨릭 사제이며 사회학자로서 한국이 세계 1등 국가의 반열에 가까이 오르지 못해도 ‘문제없다’고 믿는다. 자살률 1등만은 면했으면 제발 좋겠다. 집단 정리해고가 25명의 자살로 이어진 쌍용자동차 사태는 우리 사회가 체계적으로 창조해 낸 사회적 배제와 사회적 타살이다. 우리는 ‘사람이 그 무엇보다 가치롭고, 인간이 함께 사니 더욱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를 최우선으로 선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서 구조와 정책으로 소외된 구성원들에게 우선적인 관심과 배려를 기울여야 한다.

13일 대법원이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에 대한 무효확인소송에 대해 '해고는 유효하다'는 취지로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판결 후 대법원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출처 : 경향DB)


국민 행복의 시대를 선언한 박근혜 정부는 국민대통합의 기치를 세운 바 있으나, 오로지 기업인들을 우대하고 노동자를 천대하는 차별 정책을 일관하고 있다. 창조경제를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에서, 우리는 과거에 ‘잘살아 보세’를 외치며 노동자의 고통과 신음을 억압하기만 했던 유신의 향기가 느껴진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고 표현했다고 대통령 후보 시절 박근혜 대통령이 TV에 나와 했던 말이 다시금 아프게 되살아난다. 살아생전에 그런 일들을 만들지 말았으면.

이제 가족의 아픔과 상처의 고리를 끊고, 국민대통합을 이끄는 행복의 시대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창조경제’의 궤도가 기업인만이 아니라 국민에게, 즉 절대다수인 서민 노동자들에게 우선적으로 봉사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만 한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할망정 국민들이 계속해서 눈물 흘리게 만들어선 안된다.


오세일 | 서강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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