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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의 4박5일 방한은 처음부터 끝까지 ‘세월호’와의 동행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황은 서울공항 환영행사에서 세월호 참사 가족의 손을 잡으며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열린 내외신 기자회견에서도 “인간적 고통 앞에서 정치적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고 했다. 그사이 세월호 가족을 만나 그들이 지고 온 십자가를 전달받은 뒤 바티칸으로 가져갔고, 유족 이호진씨에게 직접 프란치스코란 이름으로 세례를 줬으며, 124위 시복미사 전 카퍼레이드 도중 차에서 내려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 중인 유족 김영오씨의 손을 맞잡았다. 떠나기에 앞서 아직도 팽목항을 떠나지 못하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편지를 남겼다. 무엇보다 방한 다음날 제의에 착용한 노란 리본은 돌아가는 기내에서도 여전히 왼쪽 가슴에 달려 있었다.

교황이 세월호 가족들과 어느 정도 접촉하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실제 상황이 펼쳐지기 전까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가족들의 요청으로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때 짧게나마 직접 만난다는 정도의 계획만 있었다. 세월호특별법 타결이 늦어지면서 광화문광장의 농성이 길어지자 교황방한준비위원회가 시복미사 때 농성장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한 게 불과 방한 이틀 전이었다. 그런데 교황은 당초 예상이나 기대를 뛰어넘는 행보를 통해 세월호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교황은 왜?

그는 자신의 방한이 화려하고 번듯한 행사에 그치길 거부했다. 아시아청년대회 참석과 124위 시복미사 집전이 방한 목적이었으나 정작 그의 뜻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을 위로하는 데 있었다. 교황이 어떤 사람을 만날지는 매우 정치적인 문제다. 고통받는 사람들이란 그 사회의 문제를 드러내는 이들이고, 그래서 권력이 외부에 노출시키기를 꺼리는 이들이다. 교황은 세월호 가족들이 자신을 만나고 싶어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자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이들이 한국사회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이라고 봤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나흘째인 17일 충남 서산시 해미읍성을 찾아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미사를 집전하기위해 입장하며 신자들과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교황은 세월호 가족들을 만나면서 정치를 뛰어넘어 휴머니즘이란 가치를 구현했다.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 고통 앞에서 이해관계를 따지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역설했다. 그는 노란 리본을 달자마자 “이런 행동이 정치적 중립을 해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노란 리본이 한국정치의 맥락에서 어떤 뉘앙스를 갖는지 정확히 알았다. 그러나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통해 세월호 가족을 위로했다. 실종자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면서 하느님에게 맡긴다고 기도했다. 교황의 행동은 고통을 대하는 감성과 자세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종교의 가치가 결코 추상적이지 않다는 사실도 교황이 실천한 가르침이다. 그는 “평화는 정의의 결과이며 희망은 연대로부터 온다”는 메시지를 내놓았다. 평화, 정의, 희망, 연대라는 단어의 추상성은 교황이 세월호 가족의 손을 잡고 그들 머리에 축복을 내리는 순간 구체적 실체로 다가왔다. 동시에 교황은 모든 가치는 선택을 통해 구현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방한 중 그의 위로가 전혀 논란의 여지가 없는 행위들, 예를 들면 아기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장애인들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데 그쳤다면 우리는 그의 메시지를 숙고할 기회를 놓쳤을 것이다.

교황 방한은 25년 만의 일이었다. 오랫동안 교황 방한을 기다렸던 어떤 사람들에게는 세월호로 뒤덮인 4박5일이 아쉽기도 할 것이다. 훨씬 크고 보편적인 메시지를 던졌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세월호에 대한 관심이 자의적으로 확대된 해석이라고 의심할 만도 하다. 실제로 교황은 진정한 대화의 중요성을 역설했고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기원했다. 위대한 순교자들의 땅을 찬양했다. 그러나 교황의 진정한 메시지는 한국사회의 가장 혼란스러운 지점을 관통하면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법과 원칙, 공평과 효율 이전에 ‘사람’이 중심이며 이를 통해 정의도, 평화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교황이 간 자리에는 무엇이 남을까. 교황 리더십이 거론되고 교황 마케팅도 활발하다. 그러나 그가 남긴 가장 큰 교훈은 자신이 그토록 아낀다는 젊은이들에게 한 말과 같다.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한다. 잠들어 있는 사람은 아무도 기뻐하거나 춤추거나 환호할 수 없다.” 깨어있는 자의 행동이 무엇인지 가까이 지켜본 ‘8월의 크리스마스’였다.



한윤정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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