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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국정 재장악을 위한 반격에 나서자마자 그 첫 번째 방책으로 보수 결집을 획책하고 있다. 5%에 머물고 있는 지지율을 조금만 더 끌어올리면 탈출구를 찾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숨은 보수파를 결집시키기에 나선 것이다. 박 대통령 자신은 청와대에서 장기농성을 하면서 바깥에서 보수 구원병을 조직해 난국을 돌파하는 전술인 셈이다. 제 살길을 찾자고 나라를 벼랑 끝으로 몰고 시민을 분열시키는 막장 승부수까지 던지는 대통령을 보면서 할 말이 없어진다.

박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보수와 진보진영 간 대결 조장도 불사하겠다는 뜻이 역력하다. 최근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정책은 하나같이 보수와 진보 간 견해가 다른 것들이다. 그제 국방부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장소인 성주 롯데골프장과 남양주시 퇴계원 군용지를 맞바꾸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유보해야 마땅한 사업에 도리어 속도를 높이고 있다. 4년 동안 가만히 두었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갑자기 군사작전하듯 밀어붙인 것도 마찬가지다. 지난 1일 협상 재개 선언에서부터 14일 가서명까지 초고속으로 진행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100만 촛불’의 퇴진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지난 16일 밤 청와대가 어둠 속에서 적막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강윤중 기자

이는 국내 정치 상황과 별도로 외교안보 현안은 지속추진해야 한다는 일부 보수여론을 등에 업고 지지층을 규합하겠다는 의도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도 보수 결집용으로 동원되고 있다. 보수성향의 교육단체인 교총까지 반대 입장을 밝혔는데도 강행하고 있다. 퇴진 압력에 물러나기 일보 직전에 몰린 대통령이 국가의 중대사를 서둘러 결정하는 것은 고금을 둘러봐도 상식이 아니다. 일자리 창출이나 철도파업 등 민생과 직결된 현안은 다 제쳐두고 갈등을 조장하는 정책만 추진하는 저의는 보수층 결집을 제외하고 설명할 수 없다. 다음 정권이 짊어질 부담을 배가시키는 대통령이 밤잠을 설치며 나라 걱정을 한다면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친박 인사들의 억지춘향식 박 대통령 옹호작전도 시작됐다. 어제는 정홍원 전 국무총리가 뜬금없이 박 대통령을 두둔하고 나섰다. 그는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적,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일방적으로 추궁해선 안된다”며 박 대통령에 대한 시민들의 사퇴 요구를 마녀사냥으로 폄훼했다. 대통령이 비선 실세에 의지해 국정을 농단하는데도 총리 자리에 있으면서 한마디 못한 사람이 무슨 염치로 나서는지 모르겠다. 당내 친박 인사들도 일제히 박 대통령 지키기에 나섰다. “불순 세력이 있다”는 등 막말까지 하면서 지지세력을 모으려 갖은 애를 썼다.

박 대통령의 보수 결집은 국정을 망치는 행위이자 이 땅의 보수세력을 모욕하는 일이다. 국정농단과 보수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지금 박 대통령이 시민들로부터 퇴진 압력을 받고 있는 것은 이념의 차이나 정책의 선호 때문이 아니다. 보편적 가치, 특히 전통적으로 보수적 가치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훼손했기 때문이다. 비선에게 특권을 주기 위해 권력을 사용한 것이야말로 명예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보수의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이다. 이런 일을 하고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보수 결집을 시도하는 것은 보수층의 양식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어제 범시민사회단체연합 등 500여 보수단체가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아이들의 손을 잡고 광화문 거리로 나서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고 있다”며 새누리당 해체와 건전 보수당 재창당을 주장했다. 이것이 진정한 보수의 목소리다.

지금 박 대통령이 하는 일은 국가가 망가지든 말든 나 혼자 살겠다는 행태다. 부패는 진보·보수를 떠나 용납할 수 없는 행위다. 자기가 스스로 만들어낸 국가 위기 상황에서 반성은커녕 편가르기를 조장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반국가 행위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라면 지금 박 대통령을 따를 수도 없고, 따라서도 안된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 숨어 분열 책동으로 연명을 꾀하는 일을 중지해야 한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고개 숙였던 사람이 잘못이 없다며 다시 고개를 든다면 현실을 매우 잘못 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국정농단과 권력남용, 부패를 위해 박 대통령을 지켜줄 보수는 없다. 박 대통령, 정신 차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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