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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22일 경찰은 ‘철도 민영화 저지’를 내걸고 파업 중이던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겠다며 민주노총이 입주해 있던 경향신문 사옥에 난입했다. 1995년 민주노총 창립 이후 본부에 공권력이 투입된 것은 처음이었다. 경찰은 5000여명의 병력을 동원해 최루액을 난사하고 정문 유리창까지 박살 냈지만 단 한 명의 지도부도 찾지 못했다. 꼭 1년이 흐른 2014년 12월22일. 경찰의 표적이었던 김명환 전 철도노조 위원장 등 핵심 간부 4명은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서부지법은 이들이 주도한 철도파업이 업무방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이맘때 초강경 조치로 노·정 관계를 얼어붙게 만든 정부와 검경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처지가 됐다.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것은 업무방해죄 성립요건의 하나인 ‘전격성’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철도파업이 사전에 예고되고 노사 간 논의가 있었으며 일련의 법적 절차도 거쳤다”며 사용자인 코레일이 파업을 예측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단순 파업에 대해서도 관행적으로 업무방해죄를 적용해온 검경에 법원이 제동을 건 것이다. 2011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파업이 이뤄져 사업 운영에 막대한 손해가 초래됐을 때만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는 판례를 세운 바 있다. 그러나 지난 8월 대법원 3부가 이 판례를 흔드는 판결을 내려 혼란이 빚어진 상황이었다. 비록 1심이지만 이번 판결의 의미가 작지 않은 이유다.

사상 최장기간 철도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법정까지 갔던 철도노조원들에 대해 법원은 전원 무죄 판결을 내렸다. 22일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김영훈 현 철도노조 위원장(흰 머리, 검은 점퍼) 김명환 전 철도노조 위원장(검은머리, 안경, 검은색 패딩점퍼)외 철도노조원들이 기뻐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업무방해죄는 파업 때마다 정부가 들고 나오는 ‘전가의 보도’다. ‘불법파업’이란 딱지만 붙이면 폭력이 수반되지 않은 평화로운 쟁의행위도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파업에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대다수 선진국에는 아예 이런 죄목 자체가 없다. 이 때문에 국제노동기구(ILO)는 10여차례에 걸쳐 한국 정부에 폐지나 개선을 권고해왔다. 이번 사건 재판부도 “단순한 근로제공 거부행위를 형사처벌하는 국가는 실질적으로 한국밖에 없어 국제사회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노동자가 노동을 제공하지 않았다고 형사처벌하는 것은 위헌적 요소가 짙다고 본다. 이제는 업무방해죄를 폐지하거나 최소한 폭력이 수반된 업무방해행위만 처벌토록 하는 등 개선책을 강구해야 한다. 파업이라면 무조건 불온시하고 범죄로 보는 시각은 버릴 때가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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