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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사법농단’에 연루된 법관들의 책임을 묻기 위해 국회에 탄핵소추를 요구하자는 주장이 법원 내부에서 제기됐다. 대구지법 안동지원 판사 6명은 오는 19일 열리는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사법농단 연루 법관들에 대한 탄핵 촉구 결의안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이들은 “사법부 구성원 스스로 행한 재판독립 침해행위에 대해 위헌적 행위였음을 스스로 국민에게 고백해야 한다”고 밝혔다. 고위 법관들이 자성은커녕 검찰 수사에 반발하는 와중에 중견·소장 법관들이 ‘제 살을 도려내는’ 결단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의 용기와 소신을 높이 평가한다.

대구지법 안동지원 소속 판사들은 ‘양승태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연루 법관에 대한 탄핵 결의가 국민들에 대한 법관들의 최소한의 실천적인 의무라고 했다. 사진은 법원행정처 폐지 등을 담은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공개된 지난 7일 오후 대법원 전경.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헌정 사상 법관이 탄핵된 사례는 없다. 그런 만큼 현직 법관들이 동료 법관의 탄핵을 주장하고 나선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안동지원 판사들은 “형사절차에만 의존해서는 형사법상 범죄행위에 포섭되지 않는 재판독립 침해행위에 대해 아무런 역사적 평가가 이뤄지지 않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고 제안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 법원 일각에서는 사법농단을 두고 ‘법관윤리상 부적절하나, 형사적 범죄는 안된다’는 견해가 있어왔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구속영장에 적시되고, 다른 사법농단 관련자들에게도 적용될 ‘직권남용죄’의 한계 때문이다. 형법은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 처벌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직권’이나 ‘의무 없는 일’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유죄 선고 비율이 높지 않다. 이 때문에 최근 학계에서는 독일 형법에 규정된 ‘법왜곡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헌법을 위반하고 주권자를 배신한 법관들이 실정법상 한계로 면죄부를 받는다면 사법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은 요원해진다. 형사처벌 절차는 계속 진행하되, 동시에 탄핵소추도 추진해야 한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안동지원 판사들의 제안대로 탄핵 촉구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국회도 탄핵소추 논의를 더 이상 미뤄선 안된다. 사법농단의 주요 인물인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현 서울고법 부장판사)은 내년 2월 법관 임기가 만료된다. 재임용 신청만 하지 않으면 이 전 상임위원은 무사히 법복을 벗게 된다. 앞서 임 전 차장도 재임용 신청을 철회하는 방식으로 ‘임기만료 퇴직’한 바 있다. 법률가들이 법의 허점을 악용해 정의를 왜곡하는 사태를 더 이상은 방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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