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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연금개혁안의 전면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연금 논의가 사실상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보건복지부가 보고한 방안에서 “보험료 인상 부분이 제일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란다.

당황스럽다. 국민연금법에 따른 재정계산은 소득대체율 40%를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이 대체율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보험료율 인상이 요청되고, 대체율을 상향하겠다는 대통령의 공약까지 감안하면 더더욱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한데 이를 되돌려 보내다니. 대통령의 눈높이에 맞는 연금 개혁은 무엇일까?

대통령의 반려 소식을 듣는 순간 2015년 연금 논의가 떠올랐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인상하는 원칙에 합의했다. 대체율 인상이 내키지 않았으나 새누리당 지도부가 공무원연금 개혁을 이끌기 위해 야당의 요구를 수용한 결과다. 막판에 청와대 반대로 입법화되지는 않았지만 성사 직전까지 갔던 실무합의안이다. 작년 대선 토론에서도 문재인 후보는 소득대체율 50%를 거듭 주장하며 ‘2015년 국회의 사회적 대화 기구에서 합의했던 내용’임을 강조했다.

남은 과제는 보험료율.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쪽에서 ‘대체율 50%, 보험료율 10%’ 방안이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보험료율 인상 폭이 적어 의아해했지만, 보험료율을 현재 9%에서 1%포인트만 올려도 기금소진연도가 2060년임에는 변화가 없기에 선택 가능한 조합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국민연금에서 재정수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대체율 10%에 부응하는 필요보험료율이 약 4~6%이다. 대체율 50%를 제안하려면 보험료율은 최소 4%포인트 이상 올려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어떻게 ‘1%의 마법’이 나올 수 있었을까?

국민연금은 가입자가 전반전에는 보험료를 내기만 하고 후반전에는 급여를 받기만 하는 제도이다. 아동수당, 기초연금처럼 현세대가 세금을 내고 동시에 수당을 받는 일반 복지제도와 달리 국민연금에선 유독 재정구조에 시차가 존재한다. 보험료율·대체율이 한묶음으로 결정되어도 전반전에는 보험료율이, 후반전에는 대체율이 효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2015년 합의안대로 가면 1% 보험료율 인상은 바로 재정에 영향을 미치지만 10% 대체율 인상은 가입자가 은퇴하는 30~40년 후에야 본격적으로 현실화된다. 2015년 기준에서 2060년까지는 주로 보험료율 인상이 작동하는 시기이다. 1%만 올려도 소진연도에 변화가 생기지 않는 이유이다.

문제는 소진 이후이다. 이때는 수급자가 늘어나고 50% 대체율로 연금을 지급해야 하기에 재정 지출은 더 커지고 그만큼 미래세대의 짐도 무거워진다. 결국 마법이 아니었다. 재정구조의 시차가 낳은 착시일 뿐이다. 하마터면 전반전만 보고 재정이 괜찮다고 판단해 국가대사를 결정할 뻔했다.

혹시 대통령은 2015년의 마법을 떠올리고 있을까? 그래서 보험료율을 조금만 올리고도 대체율 50%가 가능한데 더 높은 보험료율 수치를 들고 온 복지부가 못마땅했을까? 지난주 김연명 청와대 사회수석의 임명은 이런 추측에 힘을 보탠다. 김 수석은 2015년 당시 문재인·김무성 합의를 이끈 실무기구의 공동위원장으로서 ‘50%·10%’ 방안의 논리를 제공했던 당사자이다. 

국민연금 개혁에서 재정 시차에 대한 이해는 무척 중요하다. 보험료율과 대체율이 각각 효과를 낳는 시기도, 연금액을 결정하고 실제 지급하는 세대도 다르기에 긴 시야에서 세대를 관통하는 인식이 요청된다. 늘 우리 세대 눈높이에 머물러 있지 않은지 되돌아봐야 하는 까닭이다.

종종 등장하는, 설령 기금이 소진돼도 부과방식으로 전환하면 된다는 주장 역시 현세대 편향을 보여준다. 적립금 없이 당해 보험료로 연금 지출을 충당하는 부과방식은 전환 시기 앞뒤 세대의 재정 몫이 비슷해야 가능하다. 부과방식의 모범으로 소개되는 독일과 스웨덴의 경우 현재 우리와 비슷한 대체율에서도 대략 소득의 19%를 보험료로 납부한다. 서구에서 세대 간 연대의 열매인 부과 방식이 한국에선 현세대의 책임 회피 논리로 활용되니 말문이 막힌다.

대통령은 배려와 공평을 중시하는 분이다. 복지부안을 반려한 배경에는 서민 가계를 걱정하는 선의가 바탕에 있다 믿는다. 그 마음이 현세대 국민뿐만 아니라 미래 아이들까지 품기를 바란다. 초고령시대를 맞이하여 연금 개혁은 미래 세대가 수용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왕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모양새이니, 대통령도 2015년의 기억을 넘어서야 한다. 국민연금 재정구조에 대한 재인식이 절실하다.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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