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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과 경찰이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를 수사하면서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 대화록을 뒤진 사실이 드러났다. 압수수색 대상에는 5월1일부터 6월10일까지 정 부대표의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 대화 상대방의 ID와 전화번호, 대화 일시, 수·발신 내역 등이 포함됐다. 정 부대표의 카카오톡 친구는 3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한 사람을 수사한다는 명분 아래 수천명의 개인정보를 가져간 셈이다. 이른바 ‘사이버 사찰’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했다는 점에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모바일 메신저에 대한 압수수색은 일반적 압수수색과 성격이 다르다. 일반적 압수수색에선 먼저 수색을 한 뒤 혐의사실과 관련된 부분만 선별적으로 가져간다. 그러나 디지털정보는 통째로 검경에 제공된다. 따라서 혐의와 무관한 개인의 내밀한 사생활 정보도 포함되며, 이 같은 정보는 추후 특정인을 겨냥한 불법사찰에 악용될 수 있다. 또한 SNS나 메신저를 통한 통신에는 복수의 상대방이 존재하는 만큼 광범위한 인권침해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

1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가 경찰로부터 카카오톡을 압수수색 받은 내용을 공개하고 있다.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6개 시민단체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공권력의 카카오톡 사찰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_ 연합뉴스


검경은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은 만큼 합법적이며, 피의사실 관련 내용만 봤을 뿐”이라 해명했다고 한다. 다음카카오 측도 “카카오톡 대화는 최대 7일만 저장되기 때문에 수사기관이 몇달치 자료를 요청해도 실제 제공되는 건 서버에 남아있는 며칠치뿐”이라고 밝혔다. 해명치고는 군색하다. 경찰이 사생활 정보를 보고도 애써 눈을 감았든, 제공된 자료가 단 하루치뿐이든 그건 중요치 않다. 정 부대표 사례 한 건만으로도 시민들은 겁을 집어먹게 마련이다. 할 말이 있어도 하지 못하는 ‘칠링 이펙트(위축효과)’다. 검찰이 사이버공간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선제적 대응’을 선포하자 카카오톡 이용자들이 텔레그램 등 해외 서비스로 이동하는 ‘사이버 망명’이 줄을 잇는 터 아닌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자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이다. 하지만 시민들이 벗이나 가족과 소통하는 메신저에서조차 속마음을 털어놓기 어렵다면, 멀쩡한 ‘국민 메신저’를 버리고 해외 메신저를 써야 한다면 이 모두 헛된 수사(修辭)에 불과할 터이다.

박근혜 정부는 정녕 ‘막걸리 보안법’이 횡행하던 권위주의 시대로 돌아가기를 바라는가. 그게 아니라면 시민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 헌법은 사생활과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않을 권리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명시하고 있다. 검찰은 사이버공간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 방침을 철회하고 전담수사팀도 해체해야 한다. 법원도 디지털정보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심사에 보다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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