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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의 국정감사 발언으로 시작된 ‘북방한계선(NLL) 논란’의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뒷거래라도 한 듯 기세를 올리던 정 의원의 말이 달라지면서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정 의원 발언이 사실이라면 제가 책임지겠다. 사실이 아니라면 정 의원과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책임져야 할 것”이라며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정 의원은 지난 8일 통일부 국감에서 “2007년 10월3일 남북 정상이 단독회담을 가졌다. 회담 내용은 녹음됐고 북한 통일전선부는 녹취된 대화록이 비밀합의 사항이라며 우리 측 비선라인과 공유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화록에서 노 전 대통령은 김정일에게 ‘남측은 앞으로 NLL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구두 약속을 해줬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 발언은 정상회담 당시 ‘비밀 녹취록’이 작성됐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하지만 회담 수행원들이 부인하자 정 의원은 11일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이 말한 대화록이 (내가 언급한) 그 대화록”이라고 딴소리를 했다. 비밀 녹취록은 없고, 공식 회담록을 근거로 발언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발언의 구체적 출처에 대해선 “확인하기 어렵다”며 즉답을 피했다고 한다.


새누리 국정조사요구서 제출 (출처: 경향DB)


어이가 없다. 정 의원은 국가 안보와 직결된 중대 사안에 대해 ‘아니면 말고’ 식 폭로를 했다가 사흘 만에 말을 바꿨다. 안보를 중시한다는 보수정당 국회의원이자 청와대 통일비서관을 지냈다는 인사가 할 일인가. 오죽하면 정 의원 발언을 대서특필하던 친여보수 언론마저 ‘비밀 녹취록은 없었다’는 기사로 자복했겠는가. 더 우스운 것은 새누리당이다. 정 의원의 말 바꾸기로 비밀 녹취록이 없음이 드러났는데도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했다. 새누리당 요구대로 국조가 시작되면 공식 회담록을 공개해야 하는데, 혈맹 사이라도 정상간 회담록을 원본 그대로 공개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좋아하는 새누리당이 왜 이 문제에서만 국제적 규범을 외면하는지 알 수가 없다. 법적으로도 대통령 관련 기록물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거나, 관할 고등법원장이 증거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영장을 발부한 경우 등이 아니면 공개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이번 사태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의 문제다. 이념 논쟁에선 다양한 시각이 존재할 수 있지만, 사실은 오직 하나뿐이다. 정 의원은 면책특권 뒤에 숨지 말고 발언의 근거와 출처를 정확히 밝혀야 할 것이다. 근거를 댈 수 없다면 잘못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것이 옳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도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기 바란다. “(NLL 논란에) 관련된 사람들이 명백히 밝힐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는데,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새누리당이 매카시즘적 행태를 버리지 않는 한, 박 후보가 주창하는 ‘100% 대한민국’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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