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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칼럼

[정동칼럼]임금논쟁

opinionX 2019. 5. 29. 10:27

경제학계의 작은 논쟁이 주요 언론에서 대서특필되는 사건이 이달 초 발생했다. ‘서강학파’로 분류되는 한 교수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근거 중 하나로 사용되는 그래프의 확대해석을 비판하였고, 보수언론은 그 비판을 소득주도성장의 근간을 흔드는 주류 경제학계의 때늦은 대반격으로 보도하였다. 그리고 소득주도성장을 옹호하는 학자들이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면서 진영 간 논쟁으로 확대되었다. 이번 비판은 엄격한 통계를 근거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족보가 없는 좌파 이론’이라는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감정적, 이데올로기적 비판과 차원을 달리한다. 또한 이러한 논쟁은 정책의 학문적 기반을 높일 수 있어 매우 바람직하다. 그러나 학계의 논쟁이 이데올로기로 재포장되어 과잉 단순화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논쟁의 초점은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을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으로 양분했을 때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 수십년간 감소했는가이다. 이 문제가 어려운 것은 우리의 자영업자 비중이 선진국에 비해 높은데 이들의 소득을 둘 중 어떤 소득으로 분류해야 하는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혼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박모씨의 월소득이 300만원이라면 이것이 노동소득일까, 자본소득일까? 한국은행의 공식 통계는 이 300만원을 전부 자본소득으로 취급한다. 그러면 지난 20년간 노동소득의 비중은 안정적이었던 것으로 계산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방법이다. 박씨의 소득에는 식당 시설에 투입한 자본에 대한 보상과 치킨 튀기기라는 고된 노동에 대한 보상이 섞여 있다. 이 둘을 분리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박씨가 치킨집을 그만두고 근로자로 취업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임금을 계산하는 것이다. 그 임금이 200만원이라면 박씨의 소득 300만원 중 200만원은 노동소득, 100만원은 자본소득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자영업자가 취업 시 받을 수 있는 임금은 직접 관찰할 수 없다. 그래서 OECD나 ILO와 같은 국제기구는 취업자의 평균임금을 자영업자가 취업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임금으로 간주하여 자영업자의 노동소득을 계산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자영업자의 평균 소득이 매우 낮기 때문에 이 방법을 사용하면 자영업자 소득의 거의 전부 혹은 그 이상이 노동소득으로 간주된다. 이렇게 계산하면 노동소득 비중은 지난 20년간 빠르게 감소했다. 자영업자의 임금을 더 낮추어 잡으면 노동소득 비중 감소 경향은 완화되지만 임금을 지나치게 낮춰 잡지 않는 한 노동소득의 감소 경향은 사라지지 않는다. 많은 학문적 연구에서는 자영업자의 소득을 계산에서 아예 빼버리는 방법이 사용된다. 이렇게 해도 노동소득이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년간 꾸준히 감소했다. 따라서 국민소득 통계에 문제가 없다면 한국의 노동소득 비중은 지난 20년간 감소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러한 관찰이 노동소득 비중을 높이기 위해 최저임금을 급상승시키는 정책을 정당화할까? 소득재분배가 수요견인적 성장 효과를 발생하려면 이 정책이 소비성향이 낮은 고소득 가계에서 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 가계로 소득을 이전시킴으로써 국민 평균 소비성향을 끌어올리고 총수요 증가를 유발해야 한다. 또한 저소득층의 소득 상승은 이들의 건강과 교육 수준을 개선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런데 최저임금 상승은 일차적으로 소득이 낮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으로부터 소득이 낮은 노동자로 소득을 이전케 한다. 이래서는 소득재분배가 성장제고 효과를 발생시키기 힘들다.

노동소득 비중이란 지표는 둔탁한 소득불평등 지표다. 노동소득에는 최저임금 수령자의 소득과 대기업 CEO의 고액 연봉이 섞여 있다. 자본소득에도 영세업자의 얄팍한 소득과 거대 재벌의 소득이 혼재되어 있다. 우리는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을 합한 총소득의 가계별 분포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많은 연구들은 종합소득 상위 1%와 10% 납세자의 소득이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90년대 중엽에서 2000년대 말까지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또한 노동소득 내부에서도 최상위 소득자의 비중이 급하게 증가하였다. 전반적인 소득 불평등도를 측정하는 지니계수도 1990년대 중엽부터 계속 악화되었다가 최근에야 소득재분배 강화에 힘입어 개선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정부는 노동 대 자본이라는 고전적 갈등관계 중심의 시각에서 탈피하여 총체적 소득이 최상위 계층이 집중되는 현상에 더욱 주목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를 완화하기 위한 방법은 둔탁한 최저임금 상승 정책이 아니라 고소득층에 대한 조세 강화와 저소득층에 대한 이전지출 집중이라는 날카로운 수단이 되어야 할 것이다.

<송의영 |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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