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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꼭 43년 전인 1975년 3월17일 새벽, 동아일보사에서 제작을 거부하면서 농성을 하던 기자, PD, 아나운서 등 113명이 각목과 해머를 휘두르는 폭력배들에게 밀려 거리로 쫓겨나는 사건이 터졌다. 그들은 1974년 10월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하고 박정희 정권의 독재와 인권 탄압에 맞서서 외롭게 싸우던 언론인들로, 추방당한 3월17일 오후에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를 결성한 뒤 지금까지 동아일보사를 상대로 복직과 배상을 요구하는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동아투위가 탄생한 곳은 서울 태평로의 신문회관(현재 한국프레스센터)이었다.

1984년 11월, 전두환 정권의 문화공보부는 “프레스센터의 소유권 등기를 한국방송광고공사(현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의 전신) 명의로 하겠다”고 밝혔다. 신문협회, 편집인협회, 기자협회 등 언론단체들은 “언론인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던 신문회관 터에 지어진 프레스센터를 방송광고를 판매하는 정부 투자기관에 주겠다는 것은 부당한 결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에 코바코는 “프레스센터 건물 중 코바코 소유분(12~20층)에 대한 관리·운영권은 정부 지침에 따라 신설되는 사단법인 언론회관이 맡는다”는 요지의 ‘한국언론회관(프레스센터) 운영계획’을 작성했다. 그것이 프레스센터 소유권을 두고 코바코와 언론단체들이 30년이 넘도록 논란을 벌이게 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노태우 정권 시기인 1989년에 문화공보부는 “프레스센터는 설립 목적에 맞게 소유권을 언론회관에 귀속시키는 것이 옳다”는 입장을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소유권 논란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7년 5월, 언론재단이 프레스센터에 입주한 14개 언론단체들에 임대관리비를 내라고 통보하자 과거에 신문회관의 소유주였던 그 단체들은 격렬하게 반발하며 애초 설립 취지대로 프레스센터를 언론인들의 품으로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이명박 정권 초기인 2008년, 헌법재판소는 “코바코가 방송광고의 판매를 독점·대행하도록 규정한 ‘광고판매 등에 관한 법률(일명 코바코법)’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 정부는 코바코를 무자본특수법인에서 주식회사(한국방송광고진흥회사, 신코바코)로 변경한 뒤 소관부처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방송통신위원회로 바꾸었다. 2013년에 코바코는 “2014년 1월부터 프레스센터의 관리·운영을 위탁하지 않겠다”고 언론재단에 통고한 뒤, 2016년 6월 언론재단을 상대로 프레스센터 관리권 관련 부당이득금 반환을 청구하는 민사조정신청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그러나 쌍방이 합의를 못해 조정이 결렬되자 2017년 1월 코바코는 다시 한국언론진흥재단(언론재단의 후신)을 상대로 2014년부터 발생한 임대료와 지연손해금 등 216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11월8일, “코바코의 관리·운영권을 인정하고 언론진흥재단이 코바코에 약 300억원대의 부당이득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30년이 넘도록 프레스센터 소유권을 넘겨달라고 주장해온 언론단체들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6개 언론단체(한국신문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기자협회, 관훈클럽, 한국여기자협회, 한국신문윤리위원회)는 그 판결이 “프레스센터에 대해 언론계의 공동자산이라는 ‘시설로서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일개 광고판매회사(코바코)의 소유물로 본 것”이라며 “새 정부가 이 문제를 주요 개혁과제로 보고 시설을 언론계 품으로 되돌려놓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코바코 소유권 문제는 사법부가 아니라 정부 유관기관들과 언론단체들이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 코바코를 관장하는 방통위와 언론진흥재단 소관부처인 문체부가 언론계와 법조계의 전문가들을 초청해서 공청회를 열거나 국민대표 토론회를 통해 가장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기 바란다.

<김종철 | 동아투위 위원장·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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