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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13년8개월 만에 피해자들의 승소로 마무리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이춘식씨 등 4명이 신일철주금(구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배소송 재상고심에서 “신일철주금은 이씨 등에게 각 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일제강점기 형성된 법률관계 중 대한민국 헌법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효력이 없음을 선언한 판결로, 역사적 의미가 크다. 먼 이국땅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피해자와 후손들의 원통함을 풀 수 있는 길이 열린 것도 다행이다. 그러나 사법농단으로 확정 판결이 5년이나 미뤄진 것은 유감스럽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法諺)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 10월 31일 (출처:경향신문DB)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두 가지였다. 우선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은 일본 판결의 국내 효력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다. 전원합의체는 “일본 법원의 판결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어긋난다는 원심 판단은 타당하다”고 밝혔다.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배가 합법적임을 전제로 내려진 일본 판결은 국내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2012년 이 사건 첫 상고심을 담당한 대법원 제1부도 “일본 판결은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는 우리 헌법의 핵심 가치와 정면충돌한다”며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또 다른 쟁점은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피해자들의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볼 수 있는지다. 대법원은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 청구를 위한 협상이 아니라 양국 간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 관계를 정치적 합의로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을 인정했다.

“마침내 이겼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구 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13년 만에 대법원에서 원고 승소로 최종 확정된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서 원고 4명 중 유일하게 생존한 이춘식씨가 소감을 밝히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왼쪽은 강제징용 피해자인 고 김규수씨의 부인 최정호씨.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주권국가로서 지극히 온당한 결론을 내리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 점이다. 2012년 대법원이 원고승소 취지로 파기 환송한 뒤 이듬해 서울고법은 “피고는 원고들에게 1억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피고 측의 재상고 이후 대법원은 별다른 이유 없이 심리를 미뤘다. 그사이 피해자 4명 중 3명이 세상을 떠났다. 선고공판에 나온 유일한 생존자 이춘식씨(94)는 “혼자라 슬프다”며 오열했다고 한다. 심리 지연 배경은 사법농단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박근혜 정권과 ‘양승태 대법원’이 재판 연기와 법관 해외파견을 맞바꾼 정황이 확인된 것이다. 뒤늦게 결론이 내려지기는 했으나, 이 사건은 사법 역사에 치욕으로 기록될 것이다. 재판거래 의혹에 연루된 법관들은 수사에 협조함으로써 속죄해야 옳다. 이번 사건과 유사한 강제징용 손배 소송을 심리 중인 법원들은 대법원 판례에 따라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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