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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고시 출신 공무원이 3급 부이사관 자리를 버리고 4급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갔다. 직급만 떨어진 게 아니다. 현직에 있으면 정년이 보장되는데 보좌관은 다음 총선까지 4년이다. 민주통합당 은수미 당선자와 함께 일하게 된 김은정 전 여성가족부 인력개발과장 이야기다.


김씨가 17년간의 공무원 생활을 끝내기로 결심한 직접적 계기는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이라고 한다. 행시 출신의 이른바 ‘공무원 엘리트’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사찰에 가담한 걸 보고 같은 공무원으로서 자괴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김씨가 언급한 ‘공무원 엘리트’는 민간인 불법사찰·은폐조작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진경락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을 가리키는 듯하다. 고용노동부 요직을 두루 거친 진씨는 총리실 파견 중 승진을 위해 불법을 무릅쓰고 은폐조작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진수 전 주무관이 증거인멸 과정을 폭로한 뒤에도 그는 “골프채 한 번 안 들 정도로 철두철미하게 법을 지켜왔다”고 강변했다. 검찰 소환에 불응하며 도피하던 진씨는 지명수배범으로 전락하고 결국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소위 ‘영혼 없는 공무원’의 전형이다.



고양이 가면 쓴 시민들 민간인 불법사찰 규탄 (경향신문DB)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이명박 정부 출범 직전인 2008년 1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국정홍보처 업무보고에서다. 당시 인수위원들이 홍보처 폐지를 강조하자 홍보처 직원들은 “대통령중심제하에서 국정홍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다”라고 하소연한 데서 비롯했다. 이후 ‘영혼 없는 공무원’은 일종의 관용구처럼 회자돼왔다. 일반인들에겐 무소신 공무원을 비꼬는 도구가, 공무원들에겐 자기합리화의 기제가 됐다. 김은정씨는 이러한 자기합리화를 정면으로 거부했다. 그는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고 하지만 국민에게 영혼을 맞추면 된다”고 했다. 수많은 공무원들의 안일함을 후려치는 매서운 죽비 소리에 다름 아니다.


현 정권 들어 공직사회의 코드 맞추기는 도를 넘고 있다. 근본 원인은 공무원을 사병(私兵)처럼 여기는 정권의 인식에 있지만 그렇다고 개별 공무원들이 모두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김은정씨는 공무원 사회의 ‘침묵의 카르텔’에 조그만 균열이라도 내고 싶다고 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공복으로서의 자부심을 지키려는 이들이 하나둘씩 늘어날 때 공직사회도, 시민의 삶도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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