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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나는 몹시 당황했다.” 카프카의 단편 <시골의사>에 나오는 첫 구절이다. 중환자를 치료하러 급히 가야 하는데 거센 눈보라가 막고 있기 때문이다. 타고 가야 할 말도 없다. 지금 야권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의 심정이 이와 다르지 않다. 지금이 어느 땐가. 무척 당황스럽고, 이 때문에 참 갑갑한 심정이다.

통합진보당의 겯거니틀거니 하는 꼴에 대해 더 말을 보탤 것이 없다. 다만 억울하고 기막혀도 대중을 믿고 다 내려놓으라고 권하고 싶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길게 보면 오늘의 시련은 진정한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벼려지는 담금질이나 성장통일 게다.

지금 시선을 주고, 지탄을 날려야 할 대상은 민주당이다. 오는 12월 대선에서 감당해야 할 역할이 더 크고 막중하기 때문이다. 그런 민주당이 헤매고 있다. 지금 민주당에 절실한 것이 뭐냐고 한마디로 묻는다면, 그것은 변화다. 새롭게 달라져야 한다는 말이다. 스스로 내걸었듯이 민주시대에서 복지시대로 넘어가려면 새로운 주체세력을 제시해야 한다. 사람이 곧 정책이라 하지 않나. 복지시대를 이끌 주체를 보여주지 않으면, 그들이 공언한 정책변경도 결국 구두선이 되고 만다. 이런 점에서 이번에 처음으로 의회에 진출한 56명의 초선 의원들에게 맡겨진 책무는 대단히 크다.

 

민주당 비대위 회의 ㅣ 출처:경향DB

그들이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모습만 보면 아쉬운 점이 더 많다. 초선 의원들이 원내대표 선거를 앞두고 성명을 발표하긴 했지만 아직 예기가 부족하다. 흔히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곧장 움직여야 한다는 명제를 두고 ‘땅을 박차고 뛰어나가라’(hit the ground running)라고 표현한다. 민주당의 초선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오는 30일부터 임기가 시작되므로 아직 의원 신분이 아니라는 말은 한가한 핑계다. 낙선 의원들이 ‘절름발이 오리’가 돼 무력한 것처럼, 초선들이 ‘갓 부화된 비둘기’처럼 어물거리면 기성 프레임에 매몰되기 십상이다.

민주당 초선의원 56명이 누군가. 그들의 상징어는 시민, 노동, 복지, 경제민주화, 평화 등 우리 사회의 핵심 아젠다들이다. 정당과 정치인이 해야 할 역할은 사회적 관심을 쟁점화하는 것이다. 특히 진보나 민주를 표방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이라면 보통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국가적 의제로 부각시키는 것이 존재 이유다. 또 그들에겐 무능한 기성정치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라는 시대적 소명도 주어져 있다.

하지만 당내 역학구도에서나 아젠다 세팅에서 초선 당선자 56명의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 이들이 변화의 동력이 되기를 바라는 게 실망으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미 당내 기성체제는 성을 쌓고 담을 높여가고 있다. 총선 패배의 충격효과도 거의 사라진 듯하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선거 후 국면에서도 민주당은 새누리당에 뒤지고 있다. <나꼼수> 등을 둘러싼 내홍도 염려스럽다. 이대로는 안된다.

변화는 언제나 불편하기 마련이다. 저항도 따른다. 하지만 변화는 불가피하다. ‘그 나물’로는 이길 수 없고, ‘그 밥’으로는 새 시대를 못 연다. 어떤 정치인이나 정당이 불편하다고 변화를 거부하면, 유권자들이 그들을 불편하게 생각할 것이다. 대중은 불편한 선택을 싫어한다. 대중은 선악의 이분법이 아니라 다양한 것 중에 차이를 보고 판단한다. 그들에게 불편한 선택을 강요하면 패배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초선 56명은 변화의 촛불이 되어야 한다.

그들이라고 왜 할 말이 없겠는가. 정치현실을 거론할 수도 있고 시간을 달라고 할 수도 있다.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러나 총선 패배 후 한 달이 지났는데도 변화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대선이 눈앞이다. 인정을 봐주고, 사정을 고려할 시점이 아니다. 그들에게 <시골의사>의 한 대목을 던져주고 싶다. “저더러 그 따위 변명으로 만족하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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