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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어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장남 유대균씨에 대해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대균씨는 청해진해운과 관계회사로부터 상품권료와 컨설팅비용을 지급받는 등의 수법으로 99억원을 빼돌리거나 회사에 손실을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사법절차를 무시하고 장기간 도주 행각까지 벌였으니 처벌받아 마땅하다. 다만 대균씨 검거로 세월호 수사의 본질이 흐려져선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세월호가 가라앉고 300여명이 목숨을 잃은 데는 수많은 원인이 얽혀 있다. 청해진해운의 비리와 과실은 그 원인의 일부일 뿐이다. 유병언 일가가 위법행위에 책임지고 처벌받는 일은 필요하지만, 그들이 체포된다고 모든 진상이 드러나는 건 아니다. 검찰과 경찰은 그럼에도 참사 발생 직후부터 유병언 일가 추적에 수사력을 집중했다. 수사의 초점인 직접적 침몰 원인과 구조 지연 사유 규명에는 실패했다. 그러고는 100일 만에 내놓은 수사 결과가 ‘유병언 시신’이다. 300여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왜, 어떻게 죽어갔는지는 밝혀내지 못한 채 변죽만 울린 격이다.

이토록 무능하고 태만했던 검경이 대균씨 체포로 갑자기 활기를 띠었다고 한다. 하지만 100일간의 부실수사가 대균씨 검거로 덮일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상당 기간 예술가로 활동해온 그가 청해진해운 경영에 깊이 개입했을 가능성은 낮다. 횡령·배임 혐의 액수 역시 사망한 유병언씨와 차남 혁기, 장녀 섬나씨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검찰은 대균씨가 붙잡히기 3시간 전 “이달 안에 자수하면 불구속 수사하는 등 선처할 방침”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여러 정황으로 미뤄볼 때 그는 ‘깃털’로 결론날 공산이 크다.

유대균·박수경이 숨어 있던 오피스텔 _ 연합뉴스

수사의 곁가지에 집착하는 것은 검경뿐이 아니다. 친여보수 언론의 선정적 보도는 듣고 보기 민망할 지경이다. 많은 매체가 대균씨와 함께 체포된 박모씨를 ‘미모의 호위무사’로 묘사하며 두 사람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박씨는 대균씨의 도피를 도운 혐의를 받고 있으나, 청해진해운 비리와의 직접적 관련성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 박씨의 사생활을 헤집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범죄자라 해도 자신이 저지른 범죄만큼만 처벌받아야 한다. 그게 법치국가의 원리다.

대균씨가 검거된 날,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는 국가정보원이 세월호 증개축에 개입한 정황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검경과 언론의 과제는 이러한 의혹을 제대로 파헤쳐 유족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이다. 시민의 눈과 귀를 가리려는 시도는 이제 그만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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