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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는다. 그 콩이 아무래도 가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턱 하니 내놓은 메주도 뭔가 신통치 않게 여겨진다. 그런 메주 가게는 조만간 망한다. 그러나 이게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에 문제는 심각하다. 공권력에 대한 불신은 날로 치솟고, 동원할 수 있는 신뢰는 거의 바닥이 났다. 도리어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신뢰 프로세스”인데, 이제 그건 엄두도 못 낼 판국이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바깥으로 들고 나갈 수는 없지 않은가?

유병언 시신 발견 발표에 대한 민심은 싸늘하다. 수사당국은 지문과 DNA라는 과학으로 무장하고 나왔지만, 의혹의 확산은 멈추지 않는다. 시신이 유병언 본인이 맞는다면 허송으로 시간 다 보낸 세월호 참사에서 이미 본 지독한 무능이 되고, 만일 아니라면 간첩조작 등에서 입증된 또 다른 조작의 연속이 된다. 어느 쪽이라도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는 정부다.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은 이런 사태를 두고, “정부가 아니라 경찰의 무능이다”라고, 콩으로 쑤지 않은 메주를 팔았다. 경찰이 언제부터인지 비정부기구 NGO가 되었던 모양이다. 그 말대로라면 민간기구인 경찰 수사력이, 검찰총장을 불법 내사로 날려버린 정부인 청와대를 어디 따를 수 있겠는가?

서울의 한 대형서점에서 학생들이 위험사회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주는 생존지침서를 살펴보고 있다. 국민들의 안전을 담보해줘야 할 국가는 불신의 대상이 되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생존지침서 판매량이 최고 10배나 증가한 것도 이런 인식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출처 : 경향DB)

우리가 현재 묻고 있는 세월호 사고의 본질은, 충분히 구할 수 있었는데 왜 못 구했는지 그 이유를 확실히 알자는 것이다. 세월호 침몰 원인조차 아직 모르고 있다. 데도 마치 유병언만 생포하면 모든 상황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것처럼 하면서, 박근혜 정권과 대다수의 언론방송은 정작 따져야 할 본질적 질문을 소멸시켜왔다. 이걸 대중들이 모른다고 착각했던가 보다. 더구나 시신 발견의 정황이 충분히 설득력을 갖지 못하자, 제대로 설명도 못하거나 금세 바뀌는 발표에 공권력의 체면은 말이 아니게 되었다. 유병언의 안경이 없다니까 농부가 잃어버린 안경이 증거로 나오고, 애초 발표 내용과는 다른 시신 사진이 툭 튀어나온다. 이러면서 뭘 믿으라는 걸까?

“어떻게 이렇게 불신사회가 되고 말았어?” 하는 탄식과 비난도 들린다. 그러나 “불신사회”라는 말은 책임소재를 의도치 않게 은폐하는 기능을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못 믿는 사태로 치닫고 있기 때문에 분노를 터뜨리는 것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가 우리를 기만하고 진실을 은폐하는 경험을 수없이 겪어왔고, 그것이 이제는 임계점에 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유가족 대책위의 의식변화는 이러한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들은 가족을 잃은 비통함만으로 뭉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구조하고 있다면서 사실은 구조하고 있지 않았고, 희생자 가족들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한다던 대통령의 약속이 그걸 지킬 의도와 의지가 전혀 없었다는 이 기만의 뼈저림을 통해 세상을 보는 힘이 엄청나게 예리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건 권력의 논리에 대한 질타이다. 더 이상 속이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불신은 오히려 긍정적이다. 각성과 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깨우침은 권력에 대한 주권자의 매서운 칼이다. 허위를 도려내고 진정한 정치를 재생시킬 그 칼 앞에서 긴장하고 진실을 밝혀가는 압력을 절감하지 못하는 권력은 얼마 못 가 뒤로 물러설 곳이 없게 될 것이다.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는 세월호 특별법 추진의 막대한 비용을 내세워 미적거리고 있다. 그러다가 치를 진짜 비용이 뭔지 모르는 소리다.

우리는 유병언 사건 발표의 진위를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정부는 국민의 희생을 가볍게 보고 있다는 것을 믿게 된 것이다.

“불신”이라고 적힌 동전의 뒷면에는 그래서 이렇게 쓰여 있다. “거짓을 향한 반격.”


김민웅 | 성공회대 교수·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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