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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4월16일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 대한민국 사회는 분명 달라져야 한다.” 이제 6·4 지방선거에서 난무한 후보들의 각종 안전공약들이 당선 후 얼마나 현실화되고 있는지 지역 유권자들이 점검해야 한다. 국회에서는 ‘세월호특별법’이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박근혜 정부는 재난안전관리 총괄기구로 국무총리 직속의 ‘국가안전처’를 장관급으로 신설하고 소방방재청·해양경찰청 폐지 계획 등등 국민 안전 정책을 밝히고 있다. 기업들도 안전에 대한 기업 예산을 반영하는 등 부산을 떨고 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안전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많이 형성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정부와 우리의 기대와는 달라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여전히 각종 화재, 폭발, 감전, 붕괴 등 대한민국 사회엔 후진국형 대형 참사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사회를 위험사회로 만들고 있는 원흉은 무엇일까?

우선 큰 밑그림으로는 정부와 대기업들의 ‘신자유주의’ 폭주기관차 정책 및 사업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과정보다는 결과만 중시하는 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민간 기업들도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 편승하고 있는 것이다. “안전(安全)은 곧 예방이다.” 즉 결과는 그 후순위다. 그 다음으로는 인명을 경시하는 우리 사회의 문화도 한몫한다고 봐야 한다. “일하다 보면 죽거나 다칠 수 있지… 남 호주머니 돈 벌어먹기가 그리 쉽겠나?” 이처럼 안전사고에 대한 온건주의 문화가 기업주들에게 인명경시 풍토를 낳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곱씹어봐야 한다.

25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시민안전 지키기 사업장 실천계획 발표 및 생명·안전 기원 108배' 행사에서 민주노총 신승철 위원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몸통만 있고 꼬리는 없는 지금의 정부 조직 개편안으로는 절대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막을 수 없다. 하여 몇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안전보건 부서를 정부와 기업 부서의 핵심조직으로 격상시켜야 한다. 현재 건설 공사에만 적용되고 있는 ‘산업안전보건관리비’ 집행을 거울삼아 일반 업종까지 대폭 확대하고 관련 부서까지 신설토록 강제해야 한다. 기업들의 주주 성과급 잔치에 대한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기업들이 안전보건에 대한 집행 비용을 낭비적 소모성 비용으로 인식하는 천박한 기업문화를 바로잡도록 해야 한다. 특히 원하도급이 혼재된 사업장에서는 안전보건에 대한 원청사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안전보건 전문가를 많이 양성하고 안정적 일자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들로 하여금 작업환경을 개선토록 해야 하고 사업장 곳곳에 만연된 위험요소들을 찾아내어 즉시 개선토록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각종 안전용품을 생산하는 중소 업체들도 긍정적인 효과가 발생한다. 이른바 고용과 안전성 효과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다. 정부 또한 300명도 안되는 고용노동부 산업안전 근로감독관 정원을 대폭 늘리고 책임성을 더 줘야 한다. 아울러 타 부처도 ‘안전보건·환경’ 등의 부서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영국처럼 노동자, 시민의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을 대폭 육성하여 이들에게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부분들을 채워야 한다.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기업의 ‘지적재산권 보호’ 운운할 때가 아니다. 재해를 발생한 사업주 처벌도 선진국 수준으로 대폭 강화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국민이 행복한 안전한 사회”를 부르짖고 있는 지금 이 시간, 우리나라 사업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없었던 안전 매뉴얼을 만들고 사업장 곳곳에 노동자 감시용 폐쇄회로(CC)TV를 마구잡이로 설치하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에서 먼저 팔을 걷고 나섰다. 관리자들이 현장 이동식 자동 CCTV를 소지하고 다니면서 전송하면 실시간으로 사무실에서 노동자들을 감시하는 시스템이다. 이처럼 기업들은 우리나라 모든 산업재해의 원흉이 노동자들의 ‘불안전한 행동’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천박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산업재해의 80% 이상이 하청업체 사업장 노동자들에게서 발생하고 있는 이유를 간과해선 안된다. 하도급에 의한 ‘적정 도급금액, 적정 임금, 적정 공기 보장’이 되지 않기 때문에 납품단가 및 작업물량을 맞추기 위해 각종 안전장치를 해제하고 속도전 작업을 하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선 노동자들의 불안전한 행동이 나올 수밖에 없다. 또 하나 제안하고 싶은 것은 위험 요소가 많은 건설현장 및 대형 화학공장은 반드시 시민과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생활안전협의체’를 구성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 이른바 주민의 알권리 보장 제도이다.

기업들은 노동자 감시 예산만 늘리지 말고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근본적인 처방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할 것이다. 지역 시민들과 노동자들이 자주적이고 주체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관리자 몇 명이 만들어낸 ‘안전 매뉴얼’은 면피를 위한 장식용일 뿐이다. 안전과 환경에 대한 법제화 요구를 ‘규제개혁위원회’가 무소불위의 칼날을 휘두르는 작금의 현실에서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막겠다는 발상은 헛된 꿈일 뿐이다.


박종국 |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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