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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의 뿌리는 깊다. 그래서 적폐(積弊·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다. 최대 사립유치원 단체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의 행태가 이를 극명히 드러낸다. 한유총은 유치원 감사 결과를 공개한 MBC를 상대로 명단공개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는 등 법적 대응에 착수했다. 다른 언론사들을 상대로 정정·반론보도 청구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앞서 한유총은 지난 16일 “이유를 막론하고 학부모님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한 바 있다. 사과가 진정성 없는 ‘쇼’에 불과했음을 이후 행태가 보여준다.

한유총의 적반하장은 일종의 학습효과에 기인했을 것이다. 사립유치원의 비리가 불거질 때마다 교육당국과 국회는 눈을 감았다. 일부 관료들은 유착이라는 전비(前非)에 발목을 잡혔고, 의원들은 한유총의 지역사회 영향력을 의식해 외면했다. 이번에도 한유총은 자신들이 이길 것으로 여길지 모른다. 과거 한유총의 집단휴업 압박에 정부가 타협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2016년 6월 한유총은 정부의 재정지원 확대를 요구하며 휴업을 예고했다가 철회했다. 당시 교육부는 급식비 등 수혜성 경비와 관련한 학부모 부담금 절감 방안을 내놓고 관련 예산을 확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한유총은 지난해 9월에도 국공립유치원 확대 정책 폐기 등을 촉구하며 휴업을 선언했다가 물러섰다. 이때도 교육부가 사립유치원 유아학비 지원금 인상에 노력하기로 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정부가 근본적 해결책을 강구하는 대신 임시 봉합만 해온 것이 오늘의 사태로 귀결됐다고 봐야 한다.

교육부는 18일 전국 시·도 부교육감 회의에서 유치원 감사 관련 대책을 내놓았다. 시·도 교육청별로 2013~2017년 유치원 감사 결과를 실명으로 공개하고, 유치원 비리 신고센터를 운영키로 했다. 또 시정조치를 이행하지 않은 유치원과 비리 신고가 들어온 유치원 등을 대상으로 내년 상반기까지 종합감사를 벌이기로 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국민 여러분에게 송구하다”며 사과하고 “폐원하겠다는 사립유치원이 있는데, 아이를 볼모로 학부모를 궁지로 내모는 어떤 행위도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의 의지 표명은 과거에도 있었다. 관건은 실행이다. 한유총은 여당이나 관료들을 통해 감사·단속 차단을 위한 ‘백도어(우회로)’를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 일개 이익집단이 ‘갑’이 되고 정부가 ‘을’ 노릇을 하는 풍경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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