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선동열 감독의 광팬이었다”는 손혜원 의원의 말은 상당 부분 사실일 것이다. 선 감독은 1980년대부터 워낙 이름을 날린 투수였던 만큼 손 의원 세대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찾기 힘들 것이다. 일본에 진출해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쳐 팬층이 넓다. 그러므로 손 의원도 그의 팬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선 감독, 그리고 야구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랬다가 ‘야알못’(야구를 알지 못하는), ‘국민 욕받이, 오지환에서 손혜원으로 교체’라는 비아냥을 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국가대표팀 축구, 프로야구, 농구 등 스포츠를 접한다. 해설자의 설명을 듣고, 신문의 분석기사를 읽으면서 나름의 보는 눈도 키운다. 그래서 스포츠 스타들이 친숙하게 느껴지고, 잘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한 발짝 더 들어가보면 전해들은 것과 실제는 다른 경우가 많다. ‘술고래’라고 소문나 있는 농구의 허재 감독이 사실 술을 자주 마실 뿐 주량이 대단히 많지는 않음을 함께 술을 마셔보고서야 알았다.
김응용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의 성격이 겉보기와 다르다는 것도 직접 만나보고서야 알았다. 감독 시절 통산승수 1위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10번이나 한 그는 항상 자신만만할 줄 알았다. ‘코끼리’라는 별명처럼 큰 덩치와 무뚝뚝한 표정을 보면서 배포도 엄청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전혀 달랐다.
그는 야구감독을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밤에도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밤마다 ‘소주 폭탄’을 마셨다고 한다. 매일 밤 소주 3~4병을 맥주 10병에 타서 마셨다고 한다. 매일 밤 소주 폭탄 30~40잔을 마신 셈이다. 소주만 마시면 빨리 취하지 않아서, 빨리 잠들기 위해 이렇게 마셨다는 것이 그의 얘기였다.
‘광팬’들의 스포츠 스타에 대한 관심도 정말 대단하다. 2006년 월드컵을 앞둔 어느 날이다. 후배가 ‘진공청소기’로 불리던 김남일 선수(현 축구대표팀 코치)를 인터뷰했다. 기사 말미에 양념으로 여자친구 얘기를 썼다. 내용은 “만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전부였다. 기사를 쓴 후배도 상대가 누구인지 몰랐다. 그런데, 팬들은 그 한마디를 단초로 상대가 김보민 아나운서라고 순식간에 지목했다. 몇 시간도 안돼 두 사람이 커플링을 끼고 있는 사진까지 인터넷에 올라왔다. ‘광팬’들은 선수의 소속팀 감독이나 프런트가 모르는 것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선동열 감독의 광팬이었다”는 손혜원 의원의 말은 완전한 사실은 아닐 것이다. 설사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손 의원은 “1200만 야구팬들이 선 감독을 불러달라고 빗발치게 요청했다”고 선 감독을 증인으로 신청한 이유를 밝혔다.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있는 이슈여서 밝혀보려고 했다는 얘기로 보인다. 공감이 간다. 하지만 높은 관심에 걸맞은 질의를 하려면 그만큼 준비가 충실했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고 하던데요”라는 질의로는 팬들의 궁금증을 해소할 수 없다.
이번 국정감사의 스타는 단연 박용진 의원이 꼽힌다. 2013~2017년 전국 교육청에서 실시한 사립유치원 감사 결과를 유치원들의 실명과 함께 공개했다. 원장이 법인카드로 명품 가방을 사고 자녀 대학교 입학금을 내는 등 유용한 사실을 알게 된 학부모들이 공분하고 있다. 인터넷에는 박 의원을 후원하겠다는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박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유치원과 관련한 다른 문제를 찾기 위해 전수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사람들의 관심이 많은 이슈라면 이 정도 준비는 했어야 한다.
박 의원은 유치원 명단을 공개하면서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측의 반발과 흑색선전을 각오했다고 말했다. 1년 반 앞으로 다가온 다음 총선에서의 불이익도 각오했다고 한다. 유권자를 대변하는 국회의원이라면 이 정도 각오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손 의원도 실수를 만회할 기회는 있어 보인다. 오는 23일 정운찬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가 출석하는 국감 자리다. 사실 지난 10일 선동열 감독을 상대로 한 국감에서는 ‘야알못’만 보여줬을 뿐 문제의 핵심인 야구대표팀 선수 선발 의혹에 대해서는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정운찬 총재를 상대로 충실한 증거와 날카로운 논리로 야구팬들의 궁금증을 풀어준다면 분위기는 단숨에 역전될 것이다. 반대로 이번에도 ‘야알못’ 소리를 듣는다면.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멕시코전에서 백태클로 퇴장당한 뒤 차범근 당시 축구대표팀 감독을 피해다닌 하석주 선수(현 아주대 감독)처럼 야구라는 말만 들어도 도망가고 싶어질지 모른다. 손 의원의 분발을 기대한다.
<김석 사회에디터>
'일반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설]지금 대한민국은 공정하고 정의로운가 (0) | 2018.10.22 |
---|---|
[시론]2018 인문주간에 부쳐 (0) | 2018.10.22 |
[사설]서울교통공사 ‘고용세습’ 논란, 진실규명이 먼저다 (0) | 2018.10.19 |
[사설]유치원총연합회의 적폐, 이번에는 뿌리 뽑아야 (0) | 2018.10.19 |
[미래의 눈]셋, 하나, 우리 (0) | 2018.10.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