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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적십자사 총재에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이 선출됐다. 명예총재인 박근혜 대통령의 인준을 거치면 다음달 3년 임기의 총재로 취임하게 된다. 100여년의 대한적십자사(한적) 역사상 첫 기업인 출신 총재다. 한적 총재는 중앙위원회 선출 절차를 거치지만 사실상 청와대의 낙점으로 결정된다. 김 회장이 한적 총재로 선출된 것은 한마디로 매우 부적절하다. 김 회장은 적십자사 업무와 직접적 관련성이 전혀 없는 기업인 출신인 데다 인도적 분야의 전문성도 일천하다. 한적은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주관하는 등 대북 인도적 지원 창구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관련 영역에서 한 번도 일한 적이 없는 문외한이다. 가뜩이나 이산가족 상봉이 기약없이 연기되는 등 남북관계가 꽉 막힌 상태에서 한적의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업인 출신 첫 한적 총재’라는 건 영예가 아니라 잘못된 파격일 뿐이다. 한적의 지향과 업무는 기업이 추구하는 영리와 효율과는 상극이다. 역대 정권에서도 낙하산 인사가 있었지만, 최소한의 전문성과 유관 경력을 갖춘 인물을 찾았기에 기업인 출신이 없었던 것이다. 봉사나 인도주의 활동을 해온 사회 원로나 정·관계의 총리급 인사, 적십자사 경력이 쌓인 인사들이 한적 총재를 역임해온 이유다. ‘김성주 한적 총재’는 그러한 최소한의 기준과 원칙마저 깨뜨린 것이다.

대한적십자사 차기 총재로 내정된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 김 내정자는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으며 현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기업인자문위원회(ABAC) 위원, 월드비전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_ 연합뉴스


결국 적십자사 경력이 전무하고 공공 분야에서의 활동이 빈약한 기업인 출신의 김 회장이 한적 총재에 입성하게 된 것은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중앙선거대책위 공동위원장을 지낸 ‘경력’을 빼고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하다. 대표 구호기관이며 대북 인도주의 사업을 맡는 한적 총재 자리를 대선 공신 보은 차원에서 써먹은 꼴이다. 김 회장은 박근혜 후보 공동선대위원장 시절 문재인·안철수 야권 후보들을 늑대·깡통이라고 비하하는가 하면, “민주당은 공산당과 똑같다” “영계를 좋아한다”는 등의 발언으로 말썽을 일으켰다. 인도, 공평, 중립, 독립, 자발적 봉사, 보편이라는 적십자 운동의 원칙을 구현하기에는 턱없는 인물이다.

‘송광용 인사 참사’에서 다시금 확인되듯, ‘수첩 인사’로 불리는 박 대통령의 일방적 독선 인사가 적십자사 총재 자리마저 대선 전리품으로 전락시켰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노무현 정부에 했던 말 그대로다. “국익은 안중에도 없고 대통령과 친한 사람들, 대통령 마음에 걸리는 사람들을 잘 먹고 잘살게 해주겠다는 발상”만 창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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