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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소송에서 이겼다. 소송의 원고인 1100여명의 노동자들 모두 그동안의 근속을 인정받고 정규직으로 전환되어야 하며, 밀린 임금도 받아 마땅하다는 법적 타당성이 확인됐다.

소송만 4년, 불법파견에 맞서 싸워온 지 10년이다. 집회도 하고, 파업도 하고, 노숙 농성, 고공 농성, 단식 투쟁 등 안 해본 게 없다. 고민과 상처는 또 얼마나 많았을까. 그 긴 시간을 견뎌온 끝에 마침내 정규직 전환 요구가 법적 정당성을 확인받았으니 당사자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함께 기뻐할 일이다.

현대자동차뿐 아니라 수많은 사업장에서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이루어지고 있는 불법파견에 제동이 걸리려나 기대도 된다.

하지만 이렇게 이번 판결이 제대로 의미를 가지려면 현대자동차가 법원의 판결을 수용하고 이행해야 한다. 만일 회사가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한다면 노동자들은 다시 몇 년을 더 견뎌야 할지 모른다.

기쁨 나누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출처 : 경향DB)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 노동자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2011년 6월, 서울행정법원은 삼성반도체에서 일했던 고 황유미, 고 이숙영씨의 백혈병을 산업재해로 판결했고, 4년 만에 얻은 소중한 결실에 온 세상이 함께 기뻐했다.

그러나 피고 측 근로복지공단과 삼성전자는 산재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항소했다. 물론 근로복지공단과 삼성에 항소할 권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이 항소함으로써 피해 노동자 가족들의 고통은 그만큼 가중됐다. 산재 신청을 준비하던 다른 피해자들은 몇 년씩 싸우면서 견딜 자신이 없어 지레 포기하기도 했다.

공식 산재 인정을 계기로 삼성반도체 공장의 안전보건관리를 점검하고 개선할 기회도 그만큼 미뤄졌다. 단적으로 2013년 삼성반도체 화성공장에서 불산 누출 사고로 젊은 노동자가 목숨을 잃고 나서야 2000건 이상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적발됐다.

이런 점검이 2년 먼저 이루어졌더라면 어땠을까. 결국 3년을 더 기다린 끝에 지난 8월 고등법원에서도 산재 인정 판결을 받아냈다. 하지만 그 3년 동안 당사자들과 이 사회의 불필요한 고통과 피해는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일까.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소송도 마찬가지다. 일찍이 고용노동부에서 불법파견이라고 판정을 했지만 현대자동차는 문제를 시정하지 않고 버텼다. 회사가 버틴 10년 동안 사내하청 노동자들도 버티면서 싸웠다. 하지만 양쪽의 버티기는 질적으로 다르다. 회사는 명약관화한 불법행위를 해놓고도 책임지지 않고 버틴 것이고, 노동자들은 정당한 요구를 하면서도 생존을 위협당하면서 버텼다.

이번 판결은 노동자의 입장이 법적으로 정당하다는 확인, 현대자동차의 버티기에는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는 확인이다.

만일 현대자동차가 이에 불복하여 항소한다면, 다음 판결까지 현대자동차뿐 아니라 수많은 사업장들의 불법파견 관행 시정도 미뤄지게 된다.

결국 수백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부당하게 피해를 입게 된다. 그러지 않도록 현대자동차는 법원의 불법파견 인정 판결을 받아들이고 하루속히 정규직 전환을 이행해야 한다.


공유정옥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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