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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만1000원. 한국에서 가장 가난한 9.99%, 소득1분위 사람들의 한 달 평균 소득이다. 지난 연말 106만원에서 큰 폭 하락했다. 이 중에서도 소위 근로능력층이 아닌 가구의 상황은 더 처참하다. 2.28명의 가족이 한 달 53만3000원으로 살고 있다고 통계는 말한다.
소득격차 확대에 대한 분석은 입장에 따라 상이한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과 정부는 인구구성의 변화로 설명한다. 노인세대 유입으로 근로소득이 하락했다는 것이다. 실제 1분위 안에서도 근로자가구의 평균소득은 153만원(평균 가구원수 2.27명)으로 그 외 가구와 꽤 차이가 난다. 낮은 임금이 가족의 유일한 소득이거나, 그 일자리마저 안정적이지 않거나 공적이전에만 의존해야 하는 위태로운 상황의 사람들에게 큰 복지의 공백이 있다.
단순하게 나누어 본다면 현재 공백은 두 가지 층위를 가질 것이다. 인구의 2% 남짓 공공부조의 사각지대, 그리고 반실업상태의 노동자다.
첫 번째는 이미 대안이 있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와 재산기준 완화 등을 통해 공공부조를 확대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선언했지만 제대로 된 대책은 아직도 없다. 올 10월부터 주거급여에서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되지만 핵심적인 생계, 의료급여에서의 계획이 없다. 정책 목표가 합의된 상황에서 시행시기만 줄다리기하는 것은 빈곤층을 고사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 시행을 위한 가장 빠른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이번 소득조사 결과는 말하고 있다.
첫 번째도 난관이 많지만 더 복잡한 것은 두 번째다. 두 번째 그룹에 대한 대책으로 정부는 취업지원 등의 사업을 꺼내들곤 하지만 좋은 대책이 될지 의문이다. 이미 일자리 정책은 빈곤층에 꽤 강력하게 시행되고 있지만 이것이 빈곤을 해결하는지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기초생활수급자 중 근로능력이 있다고 판명되는 경우 자활에 참여하거나 취업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한 노력을 증명하지 않으면 급여가 중지된다.
문제는 어떤 일자리냐는 것이다. 빈곤에 빠진 사람들은 대개 한두 가지 이상의 복잡한 상황에 놓여있지만 이것을 고려하지 않는 저임금, 고강도의 일자리일 가능성이 높다. 자활사업에 참여한다 할지라도 3년의 기간제한이 있다. 자활사업은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기 때문에 임금도 낮다.
그냥 일자리 정책으로는 부족하다. 정부가 제공하고 보장하는 일자리, 괜찮은 임금과 안정성을 가진 일자리가 공공의 일자리로 공급되어야 한다. 일방적인 근로능력평가와 자활 참여 기간제한을 폐지하고 최저임금 적용, 현물급여의 유지, 자활사업에 대한 이윤중심 성과평가 근절. 이런 조치가 동반되지 않으면 개인의 수준에서도 ‘빈곤 탈출’은 불가능하다.
문제는 가난은 일을 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라고 보는 ‘정책적 게으름’이다. 이는 빈곤층에 대한 낙인과 선입견인 동시에 한국의 빈곤상황에 대응하기에는 낡은 방식이다. 노인빈곤이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는데 언제까지 고령층에게 한달 20만~30만원짜리 일자리로 연명하라고 할 것인가. 평생 일을 해왔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공공부조가 우선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닌가.
또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은 지난해 기초생활수급비가 단 1.16% 인상에 그쳤다는 점이다. 수급비가 낮은 문제는 누가 수급자가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수급자 선정기준도 낮다는 의미다. 언론과 정부는 곧잘 사각지대 문제와 수급자들의 삶의 질을 대립시키는 방식(급여 상향이 우선인가, 사각지대 해소가 우선인가)으로 설명하지만 사실 둘은 명백히 구별되지 않는다. 오는 7~8월쯤 결정될 내년 선정기준 상향이 절실하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비롯한 공공부조 확대 조치는 의지에 따라 속도를 높일 수 있다. 더불어 빈곤정책이 갖는 몇 가지 편향을 벗어난 정책이 이제 시도돼야 한다. 지금 빈곤정책의 가장 중요한 문제점은 복잡하고 기준에 맞추기 까다롭다는 점이다. 빈곤정책은 훨씬 단순하고 관대해져야 한다. 선별적 복지라도 최대한의 보편성을 추구할 때 다양한 빈곤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실효성 높은 정책으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김윤영 |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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