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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청와대’를 상대로 로비한 구체적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법원행정처는 대법원장과 대통령의 독대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친박근혜계 핵심인사와 접촉하고, 국정 협조를 약속하는 별도 자료까지 건넸다고 한다. 이후 청와대에서 이뤄진 박근혜·양승태 회동은 이 같은 로비의 결과물일 공산이 크다. 양측의 유착 정황은 사법농단의 핵심인 재판거래 의혹이 사실일 가능성을 짙게 한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에 따르면, 2015년 6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서울의 한 식당에서 친박계 핵심인 이정현 의원을 만났다고 한다. 임 전 차장은 이 의원에게 ‘창조경제정책에 협조할 테니 상고법원 설치를 도와달라’는 요청을 했다. 이 의원은 그 자리에서 ‘문고리 3인방’ 일원인 정호성 당시 청와대 부속비서관에게 전화해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통령 간 독대 일정을 잡아달라고 했다. 법원행정처는 며칠 후 기획심의관을 이 의원 사무실에 보내 ‘사법한류를 통해 창조경제정책에 협조하겠다’는 자료까지 전달했다. 그로부터 두 달 후인 8월6일 양 전 대법원장은 청와대에서 박 전 대통령과 오찬 회동을 했다.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이뤄진 ‘사법농단’ 때문에 부당한 판결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들이 양 전 대법원장의 가면을 쓰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가 박근혜·양승태 회동에 주목하는 것은 재판거래 의혹과의 연관성 때문이다. 2015년 7월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 문건에는 대법원이 심리 중이던 ‘발레오만도 노동조합 조직형태 변경 사건’이 등장한다. 문건은 이 사건의 결론에 따라 “향후 노동조합 운영방식 전반에 큰 파급력이 예상”된다고 썼다. 이 문건이 만들어진 직후 청와대 회동이 이뤄졌다. 그리고 2016년 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노조 손을 들어준 원심 판결을 뒤집었다. 사용자에 대한 교섭력을 높이려 만든 ‘산업별 노조’ 소속 지부·지회를 과거의 ‘기업별 노조’로 쉽게 전환하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박 전 대통령과의 회동을 앞두고) 청와대와 (사전에) 교감을 나누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회동 성사를 위한 법원의 집요한 로비 행태에 비춰볼 때 그의 발언을 사실로 믿기는 어렵다.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 등 관련자들은 이제라도 모든 진실을 털어놓는 게 도리다. 검찰은 재판거래 의혹의 규명을 위해서라도 양승태 대법원과 박근혜 청와대의 커넥션을 낱낱이 파헤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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