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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소야대 현실 속에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두 가지 선택지를 앞에 두고 있었다. 하나는 연정 혹은 여야 협치다. 진보·보수 시민 모두가 참여한 촛불혁명의 취지에 맞게 여러 정당이 손을 잡고 국회 다수파를 구성, 개혁을 추진하는 방법이다. 연정론은 촛불혁명에 담긴 연대의 정신을 받들 수 있다는 점에서 지지를 받았다.

다른 하나는 대선에서 선택받은 쪽이 더불어민주당이니, 민주당 단독으로 국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민주당정부론이다. 이 경우 개혁입법은 유보해야 한다. 국회를 우회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 행정명령을 통해 빠른 변화를 보여줌으로써 새 정부에 대한 높은 기대감을 어느 정도 충족시킬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자를 택했고, 청와대가 1년간 적폐청산을 주도했다. 정권 인수 과정 없이 출범한 정부였다. 새 정부 비전을 공유한 인물이 포진한 청와대가 국정을 진두지휘하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했고, 효율적인 측면도 있었다. 최고의 지지율이 입증한다. 하지만 그건 국회 우회, 정당 배제, 내각 무시의 대가였다.

민주당도 자의 반 타의 반 배제되었다. 지난 1년간 정부 성격에 합당한 이름은, 모두가 정확하게 부르고 있듯이 문재인 정부다. 어떤 관점에서도 당초 구상했던 민주당 정부는 아니다. 문 대통령의 뒤에 펼쳐져 있는 병풍 같은 존재로서 민주당이 한 게 있다면, 딱 하나. 무위(無爲)의 정치. 인내와 침묵의 긴 시간을 보낸 민주당은 ‘수다는 반역’이라는 신조를 가슴 깊이 새겼던 것 같다. 그게 나쁘지는 않았다. 상당한 보상을 받았다. 민주당은 천장에 닿고, 보수야당은 바닥에 붙은 지지율이 잘 말해준다.

절정의 순간이 계속되는 법은 없다. 지방선거는 끝났다. 누구도 최고점에 영원히 머무를 수 없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는 게 좋을 것이다. 벌써 세상이 바뀌고 있다. 그동안 정부 발목을 잡고 있던 보수세력을 떨쳐내는 데 힘을 보탰던 시민들이 보수야당의 궤멸을 직접 목격했다. 정부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최근 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이 하락하고 정의당 지지율이 창당 이래 최고치인 10%에 달했다. 정부를 상대로 협력과 견제를 적절히 잘했다는 평가를 받은 결과로 해석되지만, 지방선거 이전에는 일어날 수 없었던 일이다. 정의당 평판이 좋아도 꼭 찍을 수 없었다. 보수 심판을 우선시한 시민들이 자기 선호를 무시하고 정부와 여당을 지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마음의 빚을 갚았다는 생각에 자유롭게 자기의 가치와 선호를 따르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 시민들은 삶을 바꾸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더 많이 생각하고, 개혁 조치는 누가 더 실행했는지 단단히 따질 것이다. 이런 질문도 던질 것이다. 그동안 쌓아놓은 지지율은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가? 삶의 개선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숫자에 불과하다. 지방선거 이후 시민의 관심사는 선거 이전과 달라지고 있다. 정치공간의 이동이라 할 만하다.

이런 국면에서 청와대의 국정 주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곧 다양한 이해와 요구가 분출할 것이고, 그런 현실은 민주주의의 두 제도인 국회와 정당 없이는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민주당은 청와대의 자장에서 벗어나야 한다. 침묵을 깨고 민주당이 해야 한다고 믿는 일을 해야 한다. 자유한국당은 국회에서 혁신의 가능성을 입증해야 한다. 젊은이의 높은 정치참여, 곧 다가올 냉전구조의 해체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하면 개혁경쟁의 무대에 오르지도 못한다.

자기 색깔을 맘껏 드러내고, 실력대로 의석을 배분받아 공정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선거제 개혁도 해야 한다.

통치의 시간이 끝났다. 청와대와 행정부가 선한 의지로 시민을 위해 홀로 일하는 시간은 이미 흘러갔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힘의 일부만 사용해서 사회의 일부 문제만 손대는 것이다.

게다가 임기가 제한된 청와대의 행정적 조치는 한시적이다. 얼마든지 되돌릴 수 있는 변화다. 겨우 그 정도 하자고 촛불혁명이 일어난 것은 아닐 것이다.

더 많은 변화, 더 깊은 개혁을 해야 한다. 그러자면 더 많은 힘을 빌려야 한다. 가능한 모든 것들의 협력과 연대가 필요하다. 중심무대는 청와대가 아닌 국회가 되어야 하고, 행동의 주체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한 경쟁과 연대의 경연,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정치의 계절이 오고 있다. 정치의 귀환을 환영한다.

<이대근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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