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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시절 경찰 ‘여론조작’ 사건의 전모가 발표됐다. 경찰청 특별수사단은 15일 2010년 2월부터 2012년 4월까지 경찰이 정부와 경찰에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조직을 동원해 온라인에 최소 3만7800건의 댓글을 작성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수사단이 지난 3월부터 수사해 온 결과다. 수사단은 이번 수사와 관련해 조현오 전 경찰청장 등 당시 경찰 지휘부 11명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하고, 추가로 확인된 관련자 4명을 계속 수사 중이다. 앞서 이명박 정부 국가정보원과 국군 사이버사령부도 수십만건의 온라인 여론조작을 한 사실이 검찰 수사로 밝혀진 바 있다. 당시 경찰마저 유사한 행위를 했다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권력기관이 얼마나 ‘사당화(私黨化)’돼 있었는지 보여준다.

이명박 정부 시절 댓글공작을 지시해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4일 구속 전 피의자 신문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오고 있다. 김영민 기자

수사단 발표를 보면 당시 경찰은 서울지방경찰청 정보관리부와 경찰청 본청 정보국·보안국·대변인실 소속 경찰관 1500여명을 동원해 온라인 댓글과 트위터 글을 달았다. 경찰이 여론조작을 한 것은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구제역, 김정일 사망, 유성기업 파업, 반값 등록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 희망버스, 제주 강정마을 사태, 정치인 수사 등 찬반 논란이 치열했던 사안들이다. 시민의 건전한 토론을 통해 형성돼야 할 정치·사회적 사안들에 대한 여론을 경찰이 정권의 입맛에 맞게 조작하려 든 것이다. 당시 댓글조작에 참여했던 경찰관들은 신분을 감추려고 지인이나 가족 등 가명·차명 계정과 해외 인터넷 프로토콜(IP)을 사용했다. 경찰 스스로 불법행위라는 것을 인식했다는 증거다. 당시 경찰은 정부 비판 성향 누리꾼인 이른바 ‘블랙펜’ 관련 자료를 사이버사로부터 넘겨받아 영장 없이 시민단체의 게시판과 누리꾼들의 e메일 등을 불법 감청한 사실도 확인됐다. 이 같은 행위를 하는 범죄자를 잡아들여야 하는 경찰이 오히려 범죄에 앞장선 셈이다.

민주 국가에서 여론은 국가 운용의 기본 요소다. 정부와 정치권은 민의가 발현된 여론을 바탕으로 정책을 세우고 조정한다. 국가기관이 여론조작에 개입했다는 것은 단순히 직권남용이라는 현행법 위반을 넘어 민주주의의 원칙과 국가의 기반을 흔든 중대 사태다. 정권의 앞잡이로 전락한 행태도 용납할 수 없다. 이번에 경찰은 자신들의 과오를 직접 수사했다. 수사 과정에서 구속된 조현오 전 청장은 검찰이 아닌 경찰 자체 수사로 구속된 첫 경찰청장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경찰로서는 제 살을 깎아내는 수사였을 것이다. 경찰은 이제부터라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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