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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륭전자 노동자들이 어제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옛 본사 농성을 스스로 정리했다. 지난해 12월30일 회사가 ‘야반도주’한 자리에서 농성을 시작한 지 358일 만이다. 이들은 그동안 벌여온 복직이나 임금 등과 관련한 개인적 투쟁 대신 비정규직 법·제도 폐기를 위한 사회적 투쟁을 선언하고 청와대까지 5일간의 오체투지 행진에 나섰다. 기륭 노동자들이 다시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대부분 여성 비정규직으로 구성된 기륭 노동자들의 엄동설한 오체투지는 한국 비정규직 노동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반영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2005년 7월부터 사측의 해고에 맞서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내걸고 1895일을 싸운 것도, 그래서 2010년 11월1일 여야 국회의원을 위시한 대한민국 사회가 지켜보는 가운데 노사가 ‘사회적 합의’를 한 것도 무위로 끝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노사 합의에 따라 복직한 노동자들에게 8개월간 일이 주어지지 않았고, 월급과 4대보험 등도 지급되지 않았으며, 그 사이 사업주가 임직원을 해고하고 회사 자산을 처분한 뒤 조합원 몰래 도둑 이사를 감행한 것도 우리가 익히 아는 일이다.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는 22일 오전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기륭전자 농성장을 정리하고 비정규직 법.제도 폐기를 선언하는 기자회견문을 발표 했다. 이와함께 사회적 투쟁을 선언하고,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요구하는 '오체투지' 행진을 청와대까지 시작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전 국민에게 약속한 사회적 합의마저도 사업주가 휴짓조각으로 만들 수 있는 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오체투지 외에 달리 호소할 방안마저 없는 현실, 그것이 대한민국 비정규직 노동의 현주소다. 정치권 일각과 시민사회가 최동렬 렉스엘이엔지(옛 기륭전자) 회장을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등 법적 대응을 벌이지만 효과가 없는 상황이다. 기륭 노동자들은 말한다. “가열찬 투쟁으로 승리를 해도 갈 곳이 없는 완벽한 절망. 이것이 비정규직 노동이다.”

비정규 노동의 절망은 법·제도가 이를 용인한 결과라는 게 오체투지에 나선 기륭 노동자들의 인식이다. 10년 가까이 단식투쟁, 천막농성, 고공농성, 연행, 벌금, 구속 등 ‘죽는 것 빼고는 다 해본’ 경험의 소산이요,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코오롱, 스타케미칼(옛 한국합섬), 쌍용자동차, 콜트콜텍, 현대차 등의 사례를 통해 깨달은 바일 것이다. 노동부의 판정이나 사법부의 판결은 물론 사회적 합의마저 무시될 수 있는 상황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기륭 노동자들은 온몸으로 호소하고 있다. 이들의 간절한 목소리에 정치권은 귀를 열고 수많은 ‘미생’들로 이루어진 대한민국 사회는 따뜻한 연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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