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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8일 평양에서 세번째 남북정상회담을 연다. 문 대통령의 방북은 대통령으로서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세번째다. 앞선 두 대통령의 방북에 비해 문 대통령의 이번 평양행 발걸음은 가볍지 않을 것이다. 2000년 정상회담 때는 핵 문제가 현안이 아니었고, 2007년에는 6자회담과 북·미 후속합의로 비핵화 해결의 가닥이 잡힌 터라 남북관계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비핵화 의제가 정상회담을 짓누르고 있다. 게다가 방북 첫날 유엔에서 대북 제재 이행을 논의하기 위한 안보리 긴급회의가 열리는 등 대외여건도 ‘맑음’이 아니다.

달리 보자면 문 대통령의 역할이 그만큼 더 커지고 무거워졌음을 방증한다. 남북대화가 북·미 협상에 종속돼온 과거와는 전혀 다른 구도하에서 정상회담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비핵화가 정식 의제로 다뤄진다는 점이 그 증거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지난 17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핵화 의제는 북·미 간에 다뤄지고 비핵화 문제를 우리가 꺼내는 데 대해 북·미도 달가워하지 않은 상황이었다”며 “그러나 지금은 비핵화가 매우 중요한 중심의제가 돼 있다”고 했다. 4·27 판문점 정상회담에서도 핵 문제가 다뤄지긴 했다. 하지만 ‘완전한 비핵화’라는 포괄적인 방향을 확인하는 정도였을 뿐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는 협상이었다고 보기 어려웠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5월 26일 오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정상회담을 하기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청와대제공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에 비핵화에 어떤 답을 내놓을지 예단하기 어렵다. 깊숙한 논의가 오간다 해도 합의문에 명시적으로 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이를 북·미 협상의 담판 카드로 남겨두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 김 위원장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비핵화에 조속히 나설 것을 국제사회에 분명하게 천명하는 장(場)으로 이번 정상회담을 활용해야 한다. 김 위원장은 지난 5일 문 대통령의 대북특사단에 자신의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국제사회가 의심하고 있는 것에 답답함을 토로했다고 한다. 풍계리 핵실험장 및 동창리 미사일 발사 실험장 폐기 등 선제적 조치들이 저평가되고 있음을 가리킨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정상회담을 국제사회의 대북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답보 국면을 돌파할 수 있는 대담한 조치를 기대한다.

군사적 긴장완화 분야에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 지난 13~14일 군사 실무회담에서 의견접근이 이뤄진 비무장지대 감시초소 철수와 공동유해발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비무장화 등은 물론 입장 차가 있는 서해 평화수역 조성도 정상 간의 담판으로 매듭지을 필요가 있다. 군사적 긴장완화는 남북평화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뿐 아니라 북한이 안심하고 비핵화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든든한 배경이 될 것이다. 남북 경제협력 방안도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한계가 있지만 경제공동체의 청사진을 그리는 수준으로는 얼마든지 협의가 가능하다. 남북경협이야말로 어려움에 처한 한국 경제의 주요한 활로가 될 수 있음을 이번에 분명하게 증명할 필요가 있다.

보수세력들도 한반도 정세의 중대 분수령이 될 이번 회담의 무게를 감안해 대승적 태도로 지켜볼 것을 당부한다. 그런 점에서 보수 정치권을 중심으로 “김정은 입맛에 맞게 꾸려진 방북단”(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이라는 비아냥이 나도는 것은 유감스럽다. 초당적 지지는 못할망정 분명한 성과조차 폄훼하는 식의 정치공세는 자제해주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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