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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올 하반기 공무원과 공공부문 인력 선발부터 블라인드 채용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력서에 출신 학교와 지역 등을 기재하지 못하게 해서 오로지 실력과 사람 됨됨이로 뽑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 발언을 환영한다. 한국 사회의 고질인 학벌·학력 차별, 지역 차별을 해소하는 일대 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지난해 한국교육개발원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91.7%가 ‘출신대학에 따른 차별이 일부(65.3%) 또는 심각할 정도(26.4%)로 존재한다’고 답했다. 블라인드 채용이 공공부문에 정착되면 학생들의 입시 경쟁이 완화되고 학부모들의 사교육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취업 과정에서 학력 차별이 심하기 때문에 입시 경쟁이 치열하고, 그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교육에 더욱 의존하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학벌·학력 차별은 단순히 교육이나 인재 선발의 불공정성 문제가 아니다. 더 큰 폐해는 명문대 졸업장을 따지 못한 대다수 사람들에게 열패감을 심어줘 그들을 체제에 순응하도록 하는 이데올로기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정치·경제 권력이 학연이라는 네트워크에 의해 분배되고, 사회의 부(富) 역시 학벌에 독점되고 있지만 이를 당연시하게 만드는 것이다. 학력 옹호론자들은 학벌이나 학력이 사람을 선발할 때 가장 신뢰할 만한 기준이며, 개인 간 경쟁을 촉발시켜 사회에 활력을 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학수학능력시험 등 현행 입시 제도는 개인의 창의성이나 도덕성 판별과는 거리가 멀다. 또 18~19세에 명문대 입학 경쟁이 끝나면 나머지 인생은 출신대학에 따라 결정되므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경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학벌·학력 차별은 계층 이동을 막고, 경제적 불평등을 대물림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문 대통령 발언을 계기로 지난해 국회에서 발의된 ‘학력·출신학교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안’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 법은 고용 및 교육 영역에서 학력이나 출신학교를 이유로 차별하는 것을 금지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고 평등권을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헌법은 학벌 같은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블라인드 채용을 공공부문은 물론이고 민간기업까지 뿌리내리게 해 우리 사회를 능력 중심의 공정사회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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