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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판결과 관련, 한국과 일본 기업의 자발적 출연금으로 재원을 조성해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방안을 일본에 제안했다고 19일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소송 당사자인 일본 기업을 포함한 한·일 양국 기업이 자발적 출연금으로 재원을 조성해 확정판결 피해자들에게 위자료 해당액을 지급함으로써 당사자들 간의 화해가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제기된 바 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일본이 이를 수용할 경우 일본 정부가 요청한 한일청구권협정 제3조 1항 협의절차의 수용을 검토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일본에 전달했다”고 했다. 이를 일본 정부가 수용하면 신일철주금과 미쓰비시중공업 등 강제동원 일본 기업과 포스코 등 한국 기업이 함께 출연해 만들어진 재단이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을 제공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18년 10월30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씨가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 당시 법원행정처는 일제 강제징용 재판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정부의 이번 제안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을 지우기 어렵다. 대법원이 지난해 10월31일 신일철주금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자 정부는 지난해 11월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외교부·법무부 등이 참여하는 차관급 태스크포스를 꾸렸다. 한·일관계 전문가들 사이에선 여러 의견이 쏟아졌고, 이번 제안도 진작에 거론돼온 방안 중 하나다. 딱히 새로운 내용도 아닌 방안을 내놓는 데 8개월 가까이 걸린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최근 한·일관계는 전방위로 파열음이 일고 있지만, 핵심 원인은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판결이다. 물론 이 문제는 사법부와 행정부의 입장이 엇갈린 사안인 만큼 대응하기가 까다롭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2005년 노무현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의 개인청구권은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고 정리한 공식입장에 배치되는 판결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정부의 대응은 지나치게 미온적이었다. 한·일 간 국장급 회담을 몇번 여는 시늉만 냈을 뿐 답을 미루면서 일본이 중재위원회 회부를 요구하는 사태에 이르도록 한 것은 유감스럽다.

이를 일본이 수용할지는 불투명하다. 일본은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청구권협정으로 모두 해결됐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일본 외무성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일본 언론들의 보도도 벌써부터 나온다. 하지만 한국이 처한 제반 여건들을 감안한다면 가장 현실성 있는 방안이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추가소송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피해자들의 반발 가능성을 감수하면서 내놓은 제안인 만큼 일본도 대승적 견지에서 검토할 것을 당부한다. 이번 제안이 악화된 한·일관계 복원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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