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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세계인권의날 70주년 기념식 축사에서 “한반도에서 냉전의 잔재를 해체하고 항구적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은 민족 모두의 인권과 사람다운 삶을 위한 것”이라며 “평화를 통해 인권이 보장되고, 인권을 통해 평화가 확보된다”고 말했다. “한반도에서 인권과 민주주의, 평화와 번영이 함께 실현되기를 기대한다”고도 했다. 그 말대로 한반도 현실에서 인권과 평화는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문 대통령이 명시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한국 사회 인권 침해,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도 평화정착 없이는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남한의 경우 국가보안법을 손대지 않고 인권을 말할 수는 없다. 한반도 분단과 적대의 종식도 국가보안법과 긴밀히 연계돼 있다. 한반도 평화를 우리가 이끌어 가기 위해서도 국가보안법 개폐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세계인권선언 70주년 기념일인 10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에서 열린 2018 인권의날 기념식에서 다문화가정 출신 모델 한현민씨와 세월호 유족 유해종씨, KTX 승무원 김승하씨,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한종선씨 등 11명의 시민사회 대표들이 세계인권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문재인 대통령 내외도 참석했다. 연합뉴스

1948년 12월에 제정된 국가보안법은 지난 70년간 한국 사회의 사상·양심의 자유를 옥죄며 권력이 반대자를 처벌하는 도구로 쓰여왔다. 국가보안법에 기반한 간첩조작, 종북몰이, 색깔론 등 폐해는 따로 거론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막대하다. 유엔과 국제앰네스티가 1990년대부터 폐지를 권고해왔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국가보안법 폐지가 거론되기 시작했고, 김대중·노무현 정부 들어 개폐 논의가 있었지만 가장 문제적 조항인 제7조(찬양·고무) 개정조차 실패했다. 지금은 논쟁조차 봉인돼 있을 정도로 상황은 후퇴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0월 방북 때 “평화체제가 되려면 국가보안법을 어떻게 할지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가 야당의 집중공격을 받은 것이 이를 웅변한다.

“노회찬 전 의원, 약자 인권향상에 기여” 문재인 대통령이 세계인권선언 70주년 기념일인 10일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정의당 고 노회찬 전 의원의 동생 노희건씨, 부인 김지선씨와 인사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노 전 의원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했다.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 들어 국가보안법이 사실상 사문화됐고, 보통 국민은 불편할 것 없는데 개폐 논의가 필요한가라는 의문도 제기된다. 하지만 이는 헌법상 권리인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정권의 성향에 맡기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가보안법 개폐 논의가 남남갈등을 가열시킬 개연성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이 과제를 미뤄둘 수는 없다.

70년에 걸친 남북 간의 적대는 남북 모두를 비정상국가로 만들었다. 양측 권력은 상대의 위협을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활용해왔다. 우리는 북한이 정상국가가 되기를 요구하지만, 우리도 정상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와 정치권은 국가보안법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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