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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칼럼

[정동칼럼]법관 탄핵

opinionX 2018. 12. 10. 11:21

2009년 11월6일 민주당과 친박연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소속 국회의원 105명은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서울중앙지법원장 시절 촛불시위 사건들을 특정 재판부에 지정 배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몰아주기식 재판 배당을 하고, 촛불재판을 하던 단독판사들에게 사실상 유죄판결을 내리도록 간섭해 헌법이 보장한 ‘법관의 독립’을 침해했던 신영철 당시 대법관이 소추대상자였다. 하지만 이 탄핵소추안에 대해 당시 여당이 표결을 거부했고, 탄핵소추안 본회의 보고 후 72시간 이내에 표결이 되지 않으면 자동폐기토록 규정한 국회법에 따라 며칠 후 이 탄핵소추안은 자동 폐기되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9년여의 세월이 흐른 지금, 법관 탄핵이 다시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우리 헌법 제65조는 법관을 포함해 대통령 등 고위공직자가 직무집행과 관련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하면 국회가 탄핵소추를 하고 헌법재판소의 탄핵결정에 의해 파면될 수 있게 한다. 외국에서는 이 중 ‘법관 탄핵’이 가장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 미국은 지금까지 연방대법관을 15차례 탄핵소추했고 그중 8명이 파면되었다. 대통령 탄핵이 성사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것과 대비된다. 일본에서는 9명의 판사들이 탄핵소추되어 7명이 파면되었다.

외국에서 법관 탄핵이 이처럼 활발히 이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헌법 제106조는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하며”라고 규정하여 법관에게 두터운 신분보장을 부여하고 있다. 대부분의 현대 민주국가들에서는 법관들이 소신 있는 독립된 재판을 하게 하기 위해 거의 예외 없이 이런 규정들을 헌법이나 법률에 둔다. 그런데 미국, 일본 등에서는 이러한 두터운 신분보장 규정에 의해 비리법관들까지 잘 걸러낼 수 없게 되는 점을 감안해 법관에 대한 탄핵제도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오래전부터 사법부나 법관직을 성역시하는 인식이 있어 왔고, 이런 이유로 한 번도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적이 없다. 어쩌면 비리법관을 걸러내기 위해 진작 활용했어야 할 법관 탄핵을 활용하지 않은 것이 오늘과 같은 엄청난 위헌적 사법농단 사태를 자초한 한 원인일 수 있다. 법관이라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탄핵을 통한 제대로 된 견제가 부족했던 것이다.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이미 사법농단과 관련해 법관으로서의 중대한 위헌행위의 두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첫째, “정부 관계자와 재판 진행 방향을 논의하고 자문한 행위”는 사법부가 행정부로부터 철저히 분리 독립하여 행정부의 권한 오남용으로부터 국민의 인권을 지켜내야 한다는 삼권분립원리에 위반된다. 둘째, “일선 재판부에 특정한 방향의 판결을 요구하고 의견을 제시한 행위”는 법관이 오직 헌법, 법률, 양심에 따라 재판하게 한 헌법상 ‘법관의 독립’을 침해한다. 그 외에도 현직 법관들이 동료 법관을 사찰하고 블랙리스트를 만들며 인사상 불이익을 준 게 사실이라면 헌법상의 ‘법관 독립’을 재차 침해한 것이 된다.

세 차례에 걸친 법원의 자체 조사 결과만으로도 이미 탄핵에 필요한 위의 위헌행위들은 상당부분 드러나 있다. 직무상 위헌행위를 해 탄핵사유에 해당하는데도 국회가 탄핵소추를 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직무유기에 해당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들에 대해 형사책임을 묻는 형사재판과 징계책임을 묻는 탄핵심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예에서 보았듯이 별개의 절차이다. 법관은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발의에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가 찬성하면 탄핵소추가 된다.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만 되어도 그 법관은 직무집행이 정지된다. 몇 년을 끌 수도 있는 형사재판에만 맡겨두어 무죄추정의 원칙 때문에 금고 이상의 유죄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기 전까지 그 법관을 재판업무에서 배제시킬 수 없는 상황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대법원 징계위원회에 의한 징계절차를 밟는다 하더라도 법관에 대한 징계는 헌법과 법률에 의해 파면이 아니라 ‘정직 1년’이 가장 중징계다. 사법농단으로 징계를 받는다하더라도 최장 1년 후에는 다시 판사로 복귀해 재판을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2009년에 법관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고 헌재에서 직무상 위헌행위를 했다는 탄핵결정이 내려졌다면 지금 상황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요즘 가끔 해본다. 그때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해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피해자 구제, 재발방지책 마련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이 온 것은 아닐까? 이번에는 국회가 제대로 나서야 한다. 역사에서 배워야 발전이 있다.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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