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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국회의원 선거구별 인구 편차를 규정한 공직선거법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지역구별 인구 편차를 현행 3 대 1에서 2 대 1 이하로 바꾸도록 기준을 제시하고, 내년 말까지 선거구 구역표를 개정토록 했다. 대대적 선거구 개편은 물론, 선거제도 전반을 둘러싼 개혁 논의가 불가피해졌다.

헌재 결정은 표의 등가성을 중시한 판단으로 본다. 헌재는 “현행 기준을 적용하면 한 명의 투표가치가 다른 한 명의 투표가치에 비해 3배를 갖는 경우도 발생하는데 이는 지나친 불평등”이라고 밝혔다. 또 “국회의원의 지역대표성을 고려한다 해도, 이것이 국민주권주의의 출발점인 투표가치의 평등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고 했다. 헌재 결정의 취지를 이해하면서도 아쉬움은 남는다. 인구의 도시 집중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표의 등가성만 따질 경우 농촌 유권자의 대표성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향후 선거법 개정 과정에서 투표가치의 평등과 국회의원의 지역대표성을 함께 충족시킬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공은 이제 국회로 넘어갔다. 정치권은 과거 선거법 개정 때마다 본질적 개혁은 외면하고 기득권 지키기에만 골몰하곤 했다. 현역 의원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게리맨더링(기형적이고 불공평한 선거구 획정)이 난무했던 까닭이다. 이번에는 달라져야 한다. 또 다시 나눠먹기식 선거구 획정을 시도하거나 시한에 쫓겨 선거법을 졸속처리하는 일이 있어선 안된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오른쪽)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30일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선거구 획정과 관련한 공직선거법 25조 등의 위헌확인 헌법소원 사건 선고를 위해 대심판정에 입장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우리는 헌재 결정이 단순한 선거구 획정 차원을 넘어 광범위한 선거제도 개편 논의의 시발점이 돼야 한다고 믿는다. 승자독식의 폐해가 심한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를 유지할지부터 숙고해야 한다. 중대선거구제나 도농복합선거구제 같은 대안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대도시에선 중대선거구, 중소도시 이하에선 소선거구제를 택하는 도농복합선거구제는 도농간 불균형을 좁히는 방안으로 고려할 만하다고 본다. 정당 득표율과 의석 배분 간 비례성이 충분히 보장되는 방향의 비례대표제 개혁, 석패율제 도입 등도 마땅히 논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선거제도 개혁의 내용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개혁의 과정이다. 선거법 개정 작업을 정치인들의 손에만 맡겨둘 수 없는 이유다. 국회의원뿐 아니라 학계와 시민사회 등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기구를 통해 ‘헌재발 선거혁명’을 이뤄내야 한다. 그럴 때만 주권자의 다양한 요구를 균형있게 반영하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대표성을 강화하는 방향의 선거제도가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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