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을 허용하는 일명 ‘존엄사법’이 8일 국회를 통과한 것은 인간의 고귀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자기결정권을 처음으로 제도화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번 법안은 대법원이 2009년 ‘세브란스 김 할머니 사건’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한 바 있고 국가생명윤리심의위가 2013년 제도화 방안을 권고한 점을 고려하면 늦은 감이 있다. 임종을 앞둔 환자에게 삶의 선택권을 부여함으로써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데는 이미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2011년 보건복지부 조사에서 국민 72.3%, 2013년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서 65세 이상 노인 88.9%가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하지만 의사 입장에서는 연명치료를 중단할 마땅한 법적 근거가 없고 자칫 살인방조죄로 기소될 수도 있어 환자와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연명치료를 그만둘 수 없었다. 이런 현실에서 법적 장치가 마련된 것은 생의 마지막을 의미 없는 치료로 보내야 하는 환자 본인은 물론 그 고통을 지켜봐야 하는 가족과 의사들 모두를 위해서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물론 이 법안은 세부적으로 더 보완해야 할 숙제들이 있다. 우선 대상 환자와 관련해 회생가능성이 없는 ‘임종기’ 환자와 회복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말기’ 환자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가 문제다. 임종기 환자 범위를 지나치게 넓히면 생명경시가 문제될 수 있고 반대로 급박한 죽음이 예상되는 환자로만 좁히면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권고안의 쟁점_경향DB


환자의 명시적 의사와 상관없이 영양·물·산소 공급 일반연명의료는 중단하지 못하게 한 것도 어느 것이 더 인도적인지 생각해 볼 대목이다. 환자의 의사표시도 없고 추정할 근거도 없는데 가족과 대리인, 병원 윤리위원회 등 제3자가 연명치료를 중단토록 한 부분 역시 남용되지 않도록 세심한 안전장치들을 마련해야 한다. 소극적 치료 중단을 넘어 안락사를 선택할 권리와 장기간 식물인간 상태로 있는 환자의 존엄성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에 관해서는 아예 꺼내보지도 못했다. 이번 법 제정을 계기로 활발한 사회적 논의를 전개, 더욱 진전된 사회적 합의를 이루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정부도 연명치료 중단이 생명윤리 경시로 흐르지 않도록 의료영리화 작업에 대한 중단과 함께 의료 윤리교육을 더 강화해야 할 것이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