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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지난달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일본 기업 신일철주금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례에 따른 것이다. 대법원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1965년 한·일 정부가 맺은 청구권협정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이들이 개인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것은 한국 법원이 미쓰비시중공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기까지 18년이나 걸렸다는 점이다. 사법부의 통렬한 반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김성주씨(가운데)와 다른 피해자 유족들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승소한 뒤 두 손을 번쩍 들며 환영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권도현 기자

대법원 2부는 29일 고 박창환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 5명이 낸 소송에서 “미쓰비시중공업은 피해자들에게 1인당 8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한 원심을 확정했다. ‘여자근로정신대’로 강제동원된 양금덕씨 등 5명이 낸 소송에서도 “미쓰비시중공업은 1인당 각 1억~1억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여자근로정신대로 끌려갔던 피해자들이 손해배상 확정 판결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부는 현 미쓰비시중공업이 일제강점기의 구 미쓰비시중공업을 계승했다고 보고 불법행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김용민의그림마당]2018년11월30일 (출처:경향신문DB)

하지만 승소가 확정된 이날, 이미 고인이 된 상당수 피해자들은 선고 결과를 직접 들을 수 없었다. 고 박창환씨 등이 소송을 낸 것은 2000년이다. 1심 재판부는 소 제기 7년 만인 2007년 원고 패소 판결을 했고, 이후 2심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2012년 대법원이 2심 재판을 다시 하도록 해 2013년 파기환송심에서 미쓰비시 측 책임을 인정했으나, 최종 확정판결이 나오기까지는 5년이 더 걸렸다. 2012년 제기된 여자근로정신대 사건도 2심 승소 이후 대법원 판결까지 3년 이상 걸렸다. ‘양승태 대법원’이 박근혜 청와대의 요구로 선고를 지연시킨 정황이 최근 사법농단 수사에서 드러난 바 있다.

현재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한 손배 소송 10여건이 서울과 광주 등의 1·2심 법원에 계류 중이다. 해당 법원들은 재판을 서둘러야 한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법언을 되새겨야 한다. 오랫동안 고통에 시달려온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줄 때만 사법부의 과오를 조금이나마 씻어낼 수 있다.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들도 거친 언사로 반발만 할 게 아니라 책임있고 이성적인 대응을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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